9. 진우의 꿈
그날 밤, 진우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오래된 집.
창문마다 커튼이 살랑였고,
빛은 흐릿하게 비쳤다.
현관 앞에 신발이 두 켤레 있었다.
하나는 본인의 것.
그리고 하나는 익숙한,
하지만 오래 본 적 없는 구두.
진우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고
부엌에는 찻잔이 두 개,
하얀 증기를 아주 천천히 날리고 있었다.
그때
서연이 나타났다.
예전과 같은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한 번쯤 멀리 다녀온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진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웃었다.
아주 작고 조용하게.
진우는 그 미소에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말하고 싶었다.
무엇이든.
‘미안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었고
‘보고 싶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먼저 말했다.
"괜찮아, 진우야.
우린 그만큼의 시간을 산 거야."
그 말이
진우의 마음에 오래 맴돌았다.
그녀가 꿈속에서
그를 용서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우는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그날따라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진우는 문득
서랍을 열어,
오래된 편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천천히 읽었다.
자신이 쓴 것도,
서연이 쓴 것도 아니었지만
그 안엔
서로가 끝내 말하지 못한 말들이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