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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지

보내지 않은 편지

10. 서로에게 쓰는 편지

by 몽유


– 서연의 편지 –

(종이 위에는 쓴 듯, 안 쓴 듯, 말들이 희미하게 번져 있다.)


진우야,

가끔 내가 너를 잊은 건 아닌가,

그런 착각이 들 때가 있어.

그래서 네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보면

아직도 울컥해.


하지만 이상하지,

그 울컥함은 이제 슬픔이 아니라

감사에 가까워.


너와 함께한 시간이

내가 더 깊어질 수 있게 했다는 걸

지나고 나서야 알았어.


그날, 내가 돌아서며 했던 침묵이

혹시 너에게 큰 상처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좋겠어.


이 편지는 너에게 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언제든 마음 한편에서

네가 이 문장을 느꼈으면 해.


‘우리는 사랑했고,

조금은 미숙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전부였던 시간이었다.’


– 서연





– 진우의 편지 –

(메일함 어딘가에 저장된, 보낼 주소가 없는 편지 초안)


서연아,

어느 순간

네가 없는 나날이 당연해졌다는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다행스러워.


그건 너를 지워서가 아니라

네가 내 안에 너무 깊게 남아

굳이 찾지 않아도 느껴지기 때문이야.


함께하지 않더라도

어느 시절의 우리가

그때 가장 솔직하고

가장 다정했던 버전으로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


그리고,

네가 지금 어디에서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걷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이 편지도 보내지 않을게.

하지만 너는 알 거라 믿어.


우리가 끝난 게 아니라,

한 시절을 다 살았다는 것을.


– 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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