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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지

내 안의 나에게

안개의 기억

by 몽유

내 기억 속에서 안개는 늘 불안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안개는 풍경을 가리고 길을 흐리게 만들지만, 사실은 내 마음속을 더 흐리게 만들곤 했다.

보이지 않는 앞날을 걱정하게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두려움을 먼저 꺼내놓게 하는 존재였다.


첫사랑과의 이별을 겪던 날 아침에도 안개는 짙게 깔려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별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어쩐지 그 뿌연 공기 속에서 오래도록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세상을 너무 일찍 떠나버린 친구들의 죽음을 들었을 때도, 녹두거리 비탈에 주저앉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던 날에도, 안개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마치 내 슬픔을 감싸 안는 장막처럼, 때로는 숨조차 막히게 하는 올가미처럼.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어도 머릿속에는 여전히 희미한 안개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어떤 날은 눈앞까지 흘러내려 세상을 흐리게 하고, 어떤 날은 마음속에서 속삭인다. “어차피 인생은 안개 속이야.”라고.

그러나 나는 안개를 단지 두려움의 상징으로만 두고 싶지 않다. 흐릿한 풍경 속에서도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조금씩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안개는 나를 가로막았지만, 동시에 나로 하여금 멈추어 생각하게 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오늘, 또다시 나는 안갯속에 서 있다. 여전히 걷어낼 수 없는 흐릿한 무언가가 안개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렸다.

언젠가 내가 이 안개를 벗어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발걸음 한 번 옮기지 않는다면 나는 그 속을 헤치며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이라곤 어디론가 한 걸음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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