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황의 끝에서 만나는 따스함으로
낯익은 풍경이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돌리더니 모르는 척하고 있다.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이제는 발밑의 그림자까지 제멋대로 늘어나서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로 날 데려가려 시도한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고,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허공이 피어오르며 어지럼증까지 일으킨다.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나만 홀로 동떨어진 듯 느껴지고, 분명히 익숙한 길임에도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골목에 서 있는 것만 같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방향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함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 불확실함 속에서야 비로소 나의 내면 깊숙한 곳을 밀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방황이란 것은 나를 흔들지만, 동시에 나에게 새로운 눈을 열어 주는 과정이다.
방황은 어쩌면 하나의 계절과도 같다. 피하고 싶어도 스며들고, 붙잡을 수는 없지만 곧 지나간다. 그 속에서 낯선 공기와 마주하고, 내 안의 목소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방황한다는 것은 종종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막막함을 동반한다. 분명히 내딛고 있는 발걸음인데도, 세상은 자꾸만 생경하게 느껴지고, 어느 방향이 옳은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진다. 때로는 어둠 속을 걷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 잡힌다. 그러나 그리 낯설 것만도 없다. 방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니까.
길을 잃은 경험은 춥고 쓸쓸하게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아주 미묘하고 따뜻한 변화의 기운도 있다. 발끝은 조심스럽게 내딛고, 발을 딛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주위를 둘러본다. 어쩌면 평소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쳤던 작은 풍경들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볼 수도 있다.
낯선 길목에서 마주하는 햇살 한 조각, 우연히 들려오는 노랫소리, 문득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이 낯설었던 마음을 위로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 짓기엔 아직 너무 이르고, 방향을 잃은 듯 보이는 길 위에서도 나는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조금은 안심시켜 준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헤맬 수 있다면 아직 걸을 힘이 남아 있다는 뜻이야. 힘이 들면 멈춰도 괜찮아. 세상은 생각보다 너그럽거든.”
그 말을 품고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방황의 시간은 스스로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틈이라는 것을. 두렵고 지치더라도 잠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구름, 바람의 어루만짐, 내 곁을 스치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이 나란 존재를 조용히 안아줄 것이다.
지금 걷는 이 길이 언젠가 나만의 이야기가 되고, 오늘 흘린 눈물이 내일을 견디는 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방황은 끝이 아니다. 나를 감싸는 온기가 되고, 내 삶을 더욱 넉넉하게 채워주는 시작이 될 것이다.
방황하는 당신을 위해, 조용히 마음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