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잊히기 위한 연습이다
나무는 스스로의 기억을 흩뿌리듯
낙엽을 떨어뜨리고
길은 발자국을 오래 붙잡지 못한다
그 위를 걷는 사람조차
자신이 지나온 흔적을 되묻지 않는다
망각은 언제나 계절의 이름을 빌려 온다
빛은 오래 머물 수 없고, 바람은 기어이 떠난다
가을 저녁은 이 두 사실을 동시에 가르쳐 준다
기억이라 부르는 것은
실은 잠시 남겨진 그림자의 무늬에 불과하다
가을은 그 그림자를 길게 늘이면서도
언제나 지워버리는 법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가을은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사라지는 방식이다
낙엽의 무게, 저녁의 길이
이름을 잃은 바람의 결 속에서
나는 얼마나 쉽게 지워질 존재인가
그러나 가을이 끝나면
기억은 제 몸을 버리고 사라지면서도
또 다른 빈자리를 내어 준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다음의 삶이 시작된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