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발갛게 물들었다가
벌써 오래된 빛에 지쳐버린
가을의 꽃들은
이름도 없이 피어나
저무는 계절에 고개를 떨군다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잎맥처럼 사라진다
뒷산의 단풍은
저물녘마다 한 장씩 유서를 남기고,
붉은 잎 하나,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이 오면
세상과의 작별을 예감한다
나도 언젠가,
이 가을처럼 사라질 것이다
한 장의 기억조차 남기지 못해도
누군가의 계절에 잠시 스친 바람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겠다
사라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 슬픔의 끝에서 나는,
가장 맑은 웃음으로 인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