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놓는 꽃
동백
- 계절을 놓는 꽃
피는 법은 알지도 못하면서
떨어지는 것부터 배운 꽃이다
바람에 등을 보이지 않고
비에도 흔들리지 않다가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
비로소 계절을 내려놓는 꽃이다
붉은 얼굴이 떨어져 눕는 순간
공기는 숨을 고르고, 길은 잠시 멈춘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말도, 생각도
잠깐씩은 느려진다
꽃잎 하나 흩어지지 않는 이별
온전히 모양을 지키는 슬픔
이젠 사랑이 지나갔다는 증거다
바다는 여전히 파랗고
봄은 아직 멀리에 있지만
동백이 누운 자리마다
겨울은 스스로를 접는다
이 꽃이 진 자리에
눈처럼 피어나 흩어지는 벚꽃이
곧 다가올 계절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