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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물에 빠진 소녀 구하기 1

by 몽유

올여름은 그렇게 폭염의 무더위가 반짝반짝할 거라더니, 정말 덥습니다. 야외에서 잠깐이라도 일을 할라치면, 머리 벗어질 듯한 그런 광폭한 뙤약볕이 내리니 무섭기까지 해요.

그래도, 이 무더위 속에서도 이제 곧 휴가들 떠나실 테죠.

그럼 물놀이 많이들 가실 텐데, 바다로, 계곡으로.

혹시나 물놀이 가시거든 성인들은 제발 술 드시고 물에 들어가지 마시고요.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 잘 지키라는 의미에서 쓰는 오래된 에피소드입니다.


89년 늦여름이었죠.

방학을 하고 내려와서는 허구한 날 친구들 몇몇과 동네 방파제에 앉아 생선 몇 마리 낚아서는 그걸 안줏거리 삼아 밤새 술에 찌들어 살았던 때인데, 그날도 그럴 심산이었죠.

다만, 친구들 오기 전에 안줏거리 장만을 혼자서 조금 일찍 나섰던 날일 뿐인데, 늘 가던 신항으로 혼자 낚싯대 하나 들고 달랑거리며 가기가 귀찮더라고요.


그래서 이따금씩 가는 동네 방파제 끄트머리에 앉았고, 고기야 물어라며 낚시채비를 내렸는데, 저기 저만치에 꼭 베이지색 천 쪼가리 같은 게 둥실둥실 떠내려 가는 거지 뭐예요. 간간이 비가 많이 오거나, 태풍이 지나면 윗동네 쓰레기들이 밀려 내려오는 샛꼬랑인데, 한내천이라고 해서 제법 넓었던 꼬랑이었죠.

방파제는 바로 앞쪽에 낮은 아치형 다리가 놓였었고, 다리 이름이 무지개다리였는데, 지금은 몇 년 전에 매립을 하며 다리를 새로 지었고, 이름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암튼, 그냥 쓰레기겠지 했는데,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꾸 쳐다보게 되고, 몇 번을 쳐다보니 나풀거리며 움직였던 듯도 하고, 계속 신경이 쓰이는 뭐 그런 거 있잖수.

제법 먼 거리였는데, 계속해서 눈길이 가고 그런.

그래서, 배치기로 다이빙을 하며 뛰어들었지요.

한 60-70미터 정도의 거리를 빠르게 쏜살같이 헤엄쳐 갔죠. 박태환선수처럼은 아녔지만, 꽤 수영을 하는 편이라 빠르게 헤엄쳐 갔던 듯해요. 뭐 빠져라 하며 빠르게 헤엄쳐 갔더랬죠.


가까이 다가가니 천 쪼가리는 치마였고, 치마사이로 시꺼먼 머리카락이 보이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놀라서 그냥 그대로 돌아 나올 뻔했었지요.

거의 움직임이 없어 보였는데, 귀신인지 인형인지?

입으로 물이 들어오는데도 몇 차례 불렀더니만,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우연히 고개를 살짝 들었던 그때 눈이 마주쳤던 것인지.

그 아이의 눈과 마주쳤더랬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눈빛과 말이죠.

아, 물론 꿈에서도 마주치기 무서운 그런 악몽스런 눈빛이 아니고, 살려주세요 하는 애처로운 눈빛.

눈물이 그렁그렁 흘러넘치는 그런 눈빛 말이에요.

헤어지자고 말한 바람피운 여친이 그런 눈빛을 하고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용서해 줄 수밖에 없는 그런 눈빛.​


얼른 아이 목을 감싸 안으며 들어올 때 보다 더 빠르게 뭐 붙어라 하고 헤엄쳐 나왔더니, 어느새 친구 한 놈이 집구석에서 엎어져 자다가 볼 일 보러 나왔는지 꾀죄죄한 모습으로 서 있길래 소리쳤죠.

119 불러라고!

무식한 놈들이 많은 동네라서 말을 안 하면 모르는 눈치 없는 놈들이라 어쩔 수가 없었더랬죠.

나 같았으면 퍼뜩 집에 가서 전화할 텐데, 이 자식이 멀거니 서서 구경하는 바람에 죽으라고 헤엄치며 두 번은 더 소리친 듯해요.


그렇게, 아이를 방파제 위로 들어 올려서 인공호흡을 했더니 다행스럽게도 119 구급대가 오기 전에 깨어났고, 구경 나온 동네 형님들이 빙 둘러서 있더군요.

그런데, 며칠 전에 제가 쓰러질 뻔하다가 아주머니들 도움으로 119 구급대를 기다렸던 것처럼 참 늦게 오더군요.

그러니 운전해 다니시다가 엠뷸런스 소리 들리면 번개같이 비켜 주도록 해요, 제발 엉뚱한 짓거리들 하지 말고.


아이는 다리 건너 동네의 초등학교 4학년의 딸내미였는데, 충격을 받아서인지 말이 조금 어눌하긴 했지만, 119 구급대 아저씨들한테 이것저것 테스트 몇 가지를 받았으며, 구급대 대원들이 저에게도 문답으로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에 아이를 병원으로 싣고 갔더랬죠.​

지금쯤이면 40대 중반은 넘었을 테고,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른들 말씀에 죽을 고비를 겪고 나면 잘 산다고 했으니까요.


사진은 옛 기억을 더듬어서 대충의 표시로 해봤고요.

아이를 안고 나온 지점과 방파제 끄트머리 위치.

지금은 매립을 해서 많이 바뀌었죠.

파란 점이 예전 방파제 끄트머리이고.

점선으로 원이 표시된 곳이 아이가 떠내려 갔던 지점인 듯한데, 아마 얼추 맞을 거예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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