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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물에 빠진 소녀 구하기 2

by 몽유

비 그친 후엔 흐린 날씨에 시원스럽던 바람이 지금은 무덥기만 합니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면 조금은 나아지겠죠.


물에 빠진 소녀 구하기 2편으로 93년 여름의 일입니다. 군 제대하고 몇 년 만에 보는 친구와 해수욕장에서 그늘막 하나 치고 멱도 감고, 소주 한 잔 하기로 계획하고 코끼리바위 쪽으로 가고 있었더랬죠.

군데군데 그늘막이나 텐트를 치고, 여유롭게 여름을 즐기고 있는 가족들과 커플들을 지나쳐 드디어 그늘막을 치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무더운 날씨는 아니었던 듯하고, 잠시 쉬면서 마실 거리를 정리하는데, 저기 멀리 사진 속에 표시된 지점쯤에 무언가 둥실둥실 떠 있더군요.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다시 보고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저기 저것이 뭐 같이 보이냐고 물었죠.

이 친구가 그냥 쓰레기 아냐 했으면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도 그것이 영 꺼림칙했나 봅니다.

함께 일어나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서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았죠. 그래도 잘 보이진 않았지만, 예전의 생각도 나고 하니 머뭇거림 없이 친구에게 안경 좀 갖고 있어라 하고 뛰어들었죠.

가까이 다가 갈수록 확신이 섰는데, 얼마나 빠르게 헤엄쳤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박태환 선수의 발뒤꿈치는 따라갔을 거예요.


움직임이라곤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넣고, 헤엄을 쳐서 급하게 나왔죠.

허리 정도의 수심에서부터 아이를 안고 달려 나오다가 굴이 많이 붙어있던 바위들에 걸려서 한 번 넘어졌고, 서둘러 안고 달려 나왔죠.

물에서 채 나오기 전에 벌써 사람들이 모였더군요.

해수욕장에 상주하고 있던 119 바다지킴이 대원들이 달려오고 있었는지 아이를 그늘막에 누이고, 호흡과 맥박을 확인하고 인공호흡을 시작한 지 얼마 안 지나서 바로 왔더군요.

그리고, 대원들에게 아이를 넘기고 그 옆에 섰더니 누군가 "아저씨 팔과 다리에 피가 나요" 하더군요.

물에서 안고 급하게 나오다가 넘어지며 아이를 안 다치게 하려다 보니 그 무게에 눌려서 팔꿈치와 무릎이 찢어졌더군요.


119 대원 중 한 명이 저를 치료하는 사이에 아이는 깨어났고, 곧 이동식 들것에 누워서 들려갔죠.

그리고, 아이의 부모와 삼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조금 전에 들어오며 봤던 그늘막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던 그 팀이더군요.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인사도 받지 않고 아이가 가는 것만 봤는데, 나중에 친구에게 저의 상처를 치료하라며 10만 원짜리 수표를 하나 주더라고 하더군요.


둘의 회포는 결국 소주 한 잔 마시지 못하고 끝나버렸고, 복학하기 전에 둘이서 지리산 천왕봉을 하루코스로 다녀오며 막걸리 한 사발로 대신했죠.

이따금씩 팔꿈치와 무릎에 있는 그때의 흉터를 보면 한 번씩 그날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제발, 아이들과 함께 어디 놀러 가시거든 어른들은 노는 거 아닙니다. 아이들 노는 거 보고 있으면, 내가 노는 것보다 더욱 즐겁지 않습니까.

맛난 음식을 먹을 때도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아이들이 그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음식 먹는 것을 보는 것이 더욱 즐겁고 맛나지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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