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물건 : 젓가락
어렸을 때 언니, 나 그리고 나의 쌍둥이 오빠 사이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신경전 비슷한 게 있었다. 언니는 아빠 쪽 사촌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그래 봤자 한 살이지만) 쌍둥이 오빠는 무려 유일한 남자 손주 인 데다 장손이었던 것이다. 명절이 되면 상황은 더 악화되었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만 해도 어른들은 큰 네모 테이블에 앉고 우리들은 작고 동그란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문제가 터진 건 우리 모두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명절날 아침 할머니 집에 도착하고 나서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큰 아빠, 아빠 그리고 삼촌이 나란히 서서 절을 하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대뜸 오빠를 부르며 말했다. “우리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여기서 같이 절을 해라”(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사실 그때만 해도 절하는 거 자체가 더 귀찮아 보였던 나와 달리 언니의 얼굴은 당혹감에 조금 일그러 졌다. 아무튼 제사가 끝나고 매년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테이블 옆에 앙증맞은 원형 테이블을 펴고는 음식이 하나둘씩 올려졌다. 그때 할머니가 또 한번 오빠를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 넌 큰 테이블에서 어른들과 함께 먹도록 해라” 이미 배가 고파서 테이블 앞에 앉아 수저를 양손에 쥐고 있던 언니는 결국 폭발해서 젓가락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제일 나이 많은 건 난데 왜 하필 쟤만 저기 앉느냐고. 오빠는 슬그머니 작은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고 언니는 눈물 반 콧물 반으로 훌쩍이며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그때 일은 할머니뿐만 아니라 한결같이 방관자의 입장에서 바라만 보던 나에게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 후 난 언니가 언젠가 여성인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을 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물론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고 언니는 성인이 되어서 전혀 관련이 없는 전공을 선택해 학업에 매진하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
기억을 거슬러보면 그때 남자 어른들 모두가 방 안에 누워 있을 때 하루 종일 거실에서 긴 나무젓가락으로 전을 굽고 설거지를 하던 엄마들의 모습은 당연하게 아니었다. 남자 어른들이 먹다 남긴 생선의 뼈를 발라 살을 골라 먹는 게 결코 당연하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어린 나의 눈에도 이상한 풍경이었지만 지금껏 그래 왔으니 그냥 그러려니 치부했던 게, 나도 모르게 누가 정한지도 모를 기준에 나 자신을 끼어 맞추고 살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편을 나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렸을 때부터 원하든 원치 않든 심어지게 되는 이러한 생각의 씨앗들이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갈 때면 어느새 훌쩍 자라 어린이가 된 조카를 위해 정성을 들여 그림책을 고른다. 따듯한 봄 노란 스웨터를 입은 소녀가 혼자서 열 정거장은 넘게 가야 하는 할머니 집으로 나름의 모험을 떠나는 그림책, 여성 과학자가 자라온 인생 여정을 담은 그림책들을, 작은 그가 어떠한 편견이나 고정된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커 가길 바라는 마음을 살포시 담아서.
이 글은 모국과 이국 두 개의 공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투룸매거진 3월호에 실린 그림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