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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Mar 01. 2021

  모든 처음

첫 번째 물건 : 사진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우리 가족의 숙원 같은 일이었지만 매번 언니가 결 혼 하고 나면, 조카가 조금 더 크고 난 후에 그리고 최근에는 오빠도 결혼하고 나서 다 같이 찍는 게 낫지 않겠냐며 미루고 또 미뤄진 것이었다. 작년 가을 내가 한국에 들어갈 때를 맞춰서 우린 드디어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진 촬영이 있기 일주일 전부터 가족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오빠는 덥수룩해진 머리를 정리했고 엄마는 다시 동그랗게 파마를 했다. 언니는 덩치가 큰 편인 형부 사이즈에 맞는 베이지색 바지(다 같이 색을 맞추기로 했다)를 사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 헤맸고 한국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된 나만 할 일없이 빈둥대다가 결국 옷장 구석에 박혀있던 정체 모를 엄마의 흰색 바지를 입고 찍게 되었다.


아빠는 방 안에서 허리가 한 뼘은 더 남게 헐렁한 면바지를 벨트로 동여 메고는 슬며시 엄마에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찍을 걸 잘못했다. 그럼 지금보단 건강한 모습으로 사진에 남았을 텐데"


쑥스럽게 웃으며 하얀 남방에 면바지를 깔끔하게 입고 거실로 나오는 아빠를 보며 우린 십 년은 더 젊어 보인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우리 시선 아래에서 조카도 할아버지 멋지다며 좋아서 방방 뛰었다.

처음 찍는 가족사진에 긴장한 우리는 정말 부자연스럽게 서서 어색한 미소만 띠고 있었다. 단체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아빠는 지친 표정으로 구석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사진 촬영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형부는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서있느라 꽤 힘들어 보였고 웬일로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던 조카는 어느새 옆에 있는 말 인형에 온통 시선을 뺏겨버렸다. 게다가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분은 오빠와 나를 또 다른 커플로 착각한 채 계속 더 붙어 보라며 다정한 포즈를 요구하셨다. 이건 다 엄마가 언제 산 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옛 서부 스타일 바지 때문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쨌든 컴퓨터 작업을 여러 번 거친 최종 사진 속 우리는 실제보다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가운데에서 웃고 있는 아빠와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머리를 세팅해서 너무나도 예뻤던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찍길 참 잘했다고.


처음 스페인에 도착하고 나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하러 갔을 때일 것이다. 그땐 무슨 생각이었는지 여권 사진도 없어서 지하철역에서 대충 찍고는 외국인청 앞의 기다란 줄에 서서 급히 신청서류를 작성했다. 하지만 서류들은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가득했다. 때마침 두 세명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같은 학원을 다니는(얼굴만 알던) 파나마에서 온 학생을 발견하고 민망할 새도 없이 도와달라고 서류를 내밀었다.


그때 처음으로 겪은 담당 공무원은 방금 출근길에 엄청 불쾌한 일이라도 있던 것처럼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내가 제대로 못 알아듣자 더 빠른 스페인어로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영어가 만국 공통어라고 누가 그랬나) 한없이 올라가는 어깨를 진정시키면서 그래도 등록은 하겠다며 영어가 섞인 스페인어로 더듬더듬 말하자 그는 한숨을 쉬며 서류를 휙 빼앗더니 뭔가를 쓰고는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화가 나면서도 언어도 제대로 못 하면서 아무 대책도 없이 무작정 비자를 신청하러 온 나 자신을 뒤늦게 후회했다. 인터넷에 한두 번 검색만 해 봤어도 최소한 서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때 스페인에서 찍었던 증명사진을 다시 꺼내보면 어디 심하게 아픈 사람처럼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오고 사람은 또 왜 그렇게 피폐해 보이는지. 당당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온통 낯설고 못 알아듣는 말 투성이인 나라에서 처음 적응하면서 몸과 마음이 고되고 힘들었을 테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의 감정 뒷면에는 언제나 처음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자리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는 모든 이들의 처음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우주비행사도 선원도 처음엔 멀미를 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꿈이 이뤄지길 바랄게요’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






이 글은 모국과 이국 두 개의 공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투룸매거진 창간호에 실린 그림에세이입니다.

https://www.2room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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