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에 회사를 관둔 난 스페인에 머물고 있었고, 돌아보면 충분히 싱그러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의 어학원 친구들과 있을 때면 한 번씩 벌써 늙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30살 생일은 뮌헨의 어느 작은 공연장에서 베프와 그의 남친과 조촐하게 파티를 했다. 신이 나서 밤새 번갈아가며 남친과 베프와 실컷 춤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음날 베프는 동그란 초코과자가 총총 박힌 초콜릿케이크를 직접 만들어주었다. 그땐 앞자리의 변화에 그렇게 주춤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또다시 앞자리가 바뀌었고 이번엔 한참을 의기소침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삶은 이제 끝난 것 같고, 게다가 이 나이에 걸맞는 많은 것들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처참한 기분까지 들었다. 게다가 때마침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온 신체적 변화는 날 더 움츠러들게 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유튜브를 찾아보고 책들을 읽었다. 그러다 어젯밤 이런 글을 발견했다. 100세 시대를 처음 맞게 된 이 세대는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고, 지금은 20-40대가 인생의 첫 번째 스텝이라면 50-70대는 두 번째 스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40대는 이미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두 번째 스텝을 잘 시작하기 위해 충분히 계속 다져나가는 시기라고.
얼마 전 시들어가는 유카화분을 살려보려고 처음으로 분갈이를 시도했다. 봉투에서 막 뜯은 검은 흙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알고 봤더니 가장 큰 나무의 뿌리가 다 썩어있었다. 상태가 그래도 괜찮은 작은 유카나무 기둥을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화분 속 흙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두드렸다. 여전히 잎은 흐물거리고 완전히 뿌리내리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곧 언젠가 푸르고 튼튼한 잎이 꼿꼿이 위를 향하게 될 테니깐. 결국 잘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