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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Dec 06. 2022

독립출판이라는 세계

도대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이번에 1인 출판사를 차려 책을 출간하면서 수도 없이 되뇌었던 말이다. 독립출판이란 세계는 굉장히 복잡하고 험난하면서도, 그럼에도 해냈다는 무언가의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첫 번째 독립출판은 작년 이 맘 때쯤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였다. sns상으로 안부만 주고받던 작가와 커피 한 잔 하자며 만나게 되었고 그때 서로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독립출판'에 대해 듣게 되었다.


독립출판...?


지금껏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두 권 출간했지만 독립출판으로 직접 내 책을 만들어서 낸다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국에 머무는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난 사부작사부작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발이 큰 사자]란 그림책이었는데 나에겐 5여 년 전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만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해서 의미가 남달랐다. 발이 유난히 커서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던 사자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개와 고양이를 보며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난 내 첫 독립출판물로 작은 그림동화책을 만들었고 10여 군데의 책방에 입고했다.


그림동화책 [발이 큰 사자]
제가 바로 발이 큰 사자입니다.


내 손으로 쓰고 그리고, 심지어 직접 제작하기까지 한 책을 누군가가 구매한다니 왠지 더 감사한 마음에 난 별책부록으로 리무버블 스티커를 만들어서 하나씩 선물하기로 했다. 사실 스티커를 제작하는 것도 처음이었는데(살아온 세월이 제번 긴데도 불구하고 처음 해 보는 일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인터넷 업체를 검색해서 가격대와 작업의 퀄리티 둘 다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주문 페이지에 그림 파일을 여러 번 수정하고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만화 에세이 [그러게, 굳이 왜] 중에서



엄마가 커터칼로 자르고 가위로 다듬은 스티커들


고백하자면 첫 번째 독립출판물을 내고 나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ISBN 번호가 없어서 독립서점에만 입고가 가능했고 서점과의 공급율에도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판형의 크기, 종이의 재질이나 두께, 면지의 삽입 여부 등 뒤늦게 소소한 퀄리티의 차이가 보였다. 그땐 한국에 머무는 동안 반드시 책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급했다. 돌이켜보면 조금 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그것도 1인 출판사를 만들어서 책을 만들고 출간하는 게 가능할까?


지금부터 책을 제작하는 동안 혼자서 인터넷의 바다를 뒤지고 수도 없이 동영상을 시청하며 차곡차곡 쌓은 노하우를 과감 없이 공유해 보고자 한다. 조금 더 많이 아는 걸 함께 나눈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깐.


1. 책 쓰고 그리기

처음부터 출간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하던 일을 관두고 한동안 포기했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헤매었던 시간이 있었다. 훌훌 털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난 꽤 긴 시간 동안 소처럼 끈질기게 되뇌고 곱씹었다. 갑자기 시간은 많아졌지만 반대로 모든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다 우연히 한 마감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주일마다 무언가를 마무리해서 공유해야 했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작년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소파에 앉아서 끄적였던 그림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매주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모임의 장기 멤버가 되었고 어느덧 원고의 분량이 꽤 쌓이게 되었다. 그때 한 분이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이 만화를 책으로 내볼 생각은 없냐고. 그렇게 이 책이 시작되었다.    

마음이 시끄럽고 복잡해서 몸도 힘들었던 그때의 나


2. 출판사 및 사업자 등록 (사업자 통장 만들기)

아무리 IT강국이라고 해도 관공서 업무는 아직 많은 부분을 직접 방문해서 처리해야 했다. 다행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년 독일로 돌아오기 전 구청에 들려서 출판사를 등록한 후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출판사를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들
-신분증
-주민등록등본
-사업장 매매 계약서 혹은 사업장 임대차 계약서
-등록 면허세: 27,000원
주의: 출판사는 면세업이므로 '부가가치세 면세사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출판사 등록증을 손에 쥐었을 때도 그랬지만 사업자 통장을 만들러 은행에 방문했을 때는 기분이 더욱 묘했다. 다른 은행 업무를 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사업자 통장을 만들고 싶다고 서류들을 쓱 내밀었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직원 분이 날 '사장님'이라고 호칭하는 게 아닌가. 앙증맞은 내 통장 잔고가 갑자기 생각나서 민망함에 괜히 얼굴을 긁적이고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관심도 없는 청약통장 브로셔를 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독일에 돌아와서 책 대금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려고 하는데 , 역시 그럼 그렇지. 홈택스부터 시작해서 공인인증서까지 오류가 펑펑 터졌고 급기야는 새벽에 엄마 폰을 매개체로 직원과 한참 동안 상담을 해야 했다. 역시나 엄마 앞에서 계속 “사장님”이란 호칭을 들으면서.


3. 인디자인 편집 및 교정

-판형 정하기

첫 번째 책 '발이 큰 사자'를 만들었을 땐 왠지 독립출판이면 일반 도서에서 해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실제로 독립서점에서 내 눈길을 붙잡는 것도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형태의 책들이었다. 독립출판의 딜레마는 소량으로 제작하려니 제작 비용이 너무 올라가고, 어느 정도 많은 수량을 인쇄하려면 또 재고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고라도 남게 된다면 나무와 숲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두 번째 책도 처음에는 세로로 길고 얇은 형태로 제작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면을 고려했을 때 결국 A5 사이즈로 제작하게 되었다.


-글씨체 선택

막상 글씨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특히 장르가 만화다 보니 너무 딱딱한 서체를 사용하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벼운 필기체 느낌도 썩 끌리지 않았다. 여러 가지 서체를 그림 위에 적용해본 후 결국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제작하고 배포한 Kobuk 돋움체와 바탕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글자크기 11로 만들었다가 샘플본의 글씨체가 조금 큰 것 같단 판단에 일일이 8-9 크기로 변경해야 했다. (한꺼번에 사이즈 변경하는 기능은 없을까요..)


-ISBN 및 바코드 등록

ISBN은 국제 도서 표준번호로 도서에 부여되는 고유번호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기본 도서 정보를 입력하면 발급 가능하다. (https://www.nl.go.kr/seoji/) 이 번호와 바코드를 발급받기 위해 많은 분들이 출판사 등록을 한다. 요즘은 대행업체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발급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난 혹시라도 바코드가 읽히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바코드 리더기 어플도 다운받아 확인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애증의 관계, 인디자인


-표지 디자인

인터넷에는 웬만하면 표지 디자인은 외주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이번 디자인은 내가 직접 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일러스트 위주의 커버 디자인 작업만 해왔는데 왠지 깔끔하고 책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드는 디자인으로 해보고 싶었다. 독일에 살다 보니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어 조금 차가워 보이는 독일 책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몇몇 지인들은 요즘 트렌드는 색감이 화려한 표지라고 피드백을 주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 계란 인형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꽤 마음에 든다.

[그러게, 굳이 왜] 표지 디자인



4. 인쇄소 선정

-제본형태 및 종이 정하기

처음엔 그림책에 많이 사용하는 하드커버 형태로도 만들어보고 싶었고 음양이나 입체감 있는 광택 같은 후가공도 추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제작하기로 한 수량에 비해 비용이 너무나도 비쌌다.(역시 항상 비용이 문제이다.) 이렇게 만들었다가는 책을 팔아도 마이너스가 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건 가장 일반적인(떡제본이라고도 불리는) '무선제본'이었다.


종이에 대해서 고백하자면 솔직히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흑백 배경의 그림이 많기 때문에 뒷면에 비치지 않도록 두께감이 있고 눈이 편안한 내지와 울퉁불퉁한 종이의 질감이 살아있으면서 역시나 무게감이 있는 표지를 만들고 싶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종이는 다음과 같다.


표지-랑데부 내추럴 240g (무광코팅 추가)
내지-미색 모조지 120g
면지-매직칼라 120g 라이트 그레이


-인쇄소 선정 및 샘플 제작

사실 외국에서 책을 만들면서 가장 곤란했던 게 인쇄소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직접 방문해서 종이와 색감도 확인해보고 싶고,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도 산더미였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인터넷을 검색해서 총 세 곳에서 샘플을 받아보았다. 한 곳은 독립출판 작가들이 많이 언급하는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비용이 가장 저렴하면서 평이 나쁘지 않아서 제작을 의뢰해봤다. 마지막으로 인쇄까지 진행하기로 결정했던 곳은 서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업체였는데 최종 샘플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샘플 제작과 독일까지의 배송비로만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갔지만, 샘플을 제작하는 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각 업체마다 작업방식이나 색감에 미세한 차이가 있고 모니터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던 오타와 수정할 소소한 부분들이 어김없이 나타나기 마련이니깐.


5. 입고 제안서 만들기

입고 제안서는 말 그대로 내 책을 소개하고 서점에 입고하기 위한 기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소개서이다.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내 의도가 한 두줄만의 문장으로 잘 표현될까 싶어서 보내기 전 수십 번 넘게 파일을 열고 수정했다.


입고 제안서에 꼭 포함되어할 항목

작가 소개 I 책 소개 I 판형 I 페이지 수 I 가격 I 초판 발행일 I ISBN 번호 I 연락처 I 정산 계좌 I 목차 I 표지 및 내지 이미지 여러 장


-나만의 팁이 있다면?

출판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서점들도 하루에 수많은 제안서를 이메일로 받는다. 개인적으로 쭉 글과 정보만 나열하는 형식보다는 ppt나 인디자인으로 사진과 그림, 이미지를 적절하게 배치해서 읽는 이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면서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내 책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너무 장황하거나 은유적인 표현을 쓰는 것보다 '책 속의 문장', '내 책을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등과 같이 핵심을 짚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6. 입고할 서점 찾기

자, 제안서가 완성되었다면 이제 입고할 서점을 찾아야 한다. 책방들에서 자주 당부하는 말이 있는데 되도록 같은 지역 내에 있는 서점에는 입고를 피해 달라는 것이다. 먼저 독립서점 사이트인 [동네서점] https://www.bookshopmap.com 에서 지역별로 서점들을 분류한 후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각각의 서점에 대해 취급 서적, 입고 방식, 이메일 연락처 등 정보를 모은다. 각각 서점마다 원하는 입점 방식이 다를 때도 많고, 더군다나 취급 서적이 다른 서점에 이메일을 보내는 건 양쪽에게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다. 번거롭더라도 추후 입고할 서점에 책을 배송할 때 수월하도록 처음부터 엑셀 파일로 일괄적으로 정리해두면 좋다. 이때 분류할 정보는 서점명, 취급 서적(미래에 다른 장르의 책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니깐) 입고 승낙 여부, 입고할 도서 수량, 주소, 연락처, 특이사항(서점 사정으로 일시적으로 입고를 받지 않고 있거나 서점 문이 닫는 날에 택배 수령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등이 있겠다.


입고 제안서를 보낼 때 이메일에는 최대한 간단히 정보를 적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복사해서 붙여 보내는 흔적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이메일이나 메시지에는 그다지 호의적인 감정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동일한 정보일지라도 최소한 서점의 이름이나 위치한 지역, 서점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 짧게나마 덧붙였다. 아, 그리고 서점을 직접 방문해서 책을 소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서점에서 조금 부담스러워한다고 하니 입고 제안과 관련해서는 이메일로 소통하는 걸 추천한다.


첫 번째로 입점한 커넥티드 북스토어 사진


만화 [그러게, 굳이 왜] 입점 서점 리스트

스토리지 북 앤 필름 해방촌점 I 스토리지 북 앤 필름 강남점 I 프루스트의 서재 I 오후 I 위드 위로 I 올 오어 낫싱 I 무아레 서점 I 조용한 흥분 색 I 에이커 북스토어 I 그런 의미에서 I 주책 공사 I 커넥티드 북스 I 책방이올시다 I 잘 익은 언어들 I 거북이 책방 I 밤 수지맨드라미 I 책방 책가도 I 그건 그렇고 I 깨북 I 작은 서점 I 오래된 서점 I 책방심다 | 인디펍 | 알라딘



언젠가 다시 세 번째 독립출판물을 만들 거냐고 묻는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내년이나 내후년쯤 머리를 부여잡고 세 번째 원고를 인디자인에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텀블벅, 와디즈 등 크라우드펀딩도 해보고 책 형태나 디자인에 조금 더 과감한 시도를 해보고 싶기는 하다. 모든 책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직접 쓰고 그리고, 제작, 유통까지 모든 걸 스스로 진행했던 한 권의 책은 그만큼 귀하고 의미가 남다르다. 출판업계의 불황이 심해지면서 출판사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책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크게 좌절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히 독립출판을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막상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전혀 감이 오지 않더라도, 모든 처음은 다 그런 거니깐.   



만화에세이 [그러게, 굳이 왜]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306344131



[그러게, 굳이 왜]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잔소리와 위로의 캐릭터, 계란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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