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쪽의 이야기‘에서 애스터와 앨리가 주고받는 편지엔 이런 대화가 있다.
괜찮은 그림과 훌륭한 그림을 가르는 차이는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대담한 5개의 선이야. 죽기 살기로 그림을 열심히 그렸는데 거기에 대담한 선을 그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손으로 종이에다 그림을 그리는 게 참 어려웠다. 태블릿이나 아이패드로 슥슥 그리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단번에 되돌아가기, 새로 고침을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애써온 걸 망쳐버릴지도 모른단 두려움이 항상 있었다. 2023년 새해에 어떤 마감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각자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를 난 [매일 손그림]으로 정했다.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꾸준히 계속하기 위해선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난 한국에서 독일로 입양해서 함께 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반려견 누리의 표정과 앉아있는 자세, 누워있는 모습 등을 관찰하고 그려나갔다. 처음엔 색칠할 여유도 없이 조심조심 선 하나씩을 그렸다. 그러다 그림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조금 어설프고 의도에서 벗어나버린 손그림들이 좋아졌다. 평소 쓰지 않는 과감한 색상으로 덧칠하기도 하고 미리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곧장 펜으로 그리기도 했다.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는 어떤 작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잘 못 그렸다고 생각되면 다시 또 그리면 돼요.“
완전히 망쳐버린 건 없다. 분명 뭔가 배웠거나 무언가는 남겼을 테고, 그렇게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