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몽 Jul 18. 2023

서른아홉, 퇴사

덴마크 대기업 10년 근무 후 퇴사한 이유

2023년 6월 1일부로 나는 자진해서 백수가 되었다.


25살 이 나라에 처음 발을 딛고 막연히 꿈만 꾸던 회사. “덴마크”라고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파워가 막강한 기업이자 워라밸 좋기로 유명한, 덴마크 내에서도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일하고 싶은 회사로 꼽히는 회사. 꿈꾸던 연봉과 복지, 멋지다는 수식어로는 설명이 모자란 사내 부대시설,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큰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던 기회들. 학교 인턴십으로 연을 맺은 후 10년여 동안 내 20대의 마지막과 30대의 대부분을 보냈던 이 회사. 난 도대체 왜 자진퇴사를 하게 되었을까.


번아웃


대학교 때 남다른 체력으로 부러움을 샀었고, 20대 말엔 하프마라톤도 뛰고 시차를 넘나들며 여행을 해도 끄떡없었던 내가 지난 몇 년 참 많이도 아팠다.

단순히 나이 때문이라고 하기엔 신체검사 수치들은 정말 우수하게 나오고, 운동도 꾸준히 했는데, 자꾸 심장이 뛰고, 수면 장애가 생기고, 유행하는 감기/독감/코로나는 죄다 걸렸다.

거기에 더해 모니터가 뿌옇게 보이고 집중력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가끔 별 일도 아닌데 감정이 격해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나기까지. 인정하기는 싫지만 재작년 심각한 스트레스 증상과 번아웃 증상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때 두 달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고 복귀를 하였지만, 아직까지도 병이 오기 전의 내 모습은 나오지 않고, 위의 증상들이 작년 말부터 다시 올라오는데, 더 이상 버티면 정말 큰일 날 것 같단 생각에 겁이 났다.



현타


왜 나는 이 고생을 하며 ‘존버’하는 거지?

누구 좋으라고?

내 월급이 정말 이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가?

남들도 과연 다 이렇게 버티고 사는 건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과 질문을 많이 던지게 되었으나, 그중 가장 무서웠던 것은 “표정”이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어두운 표정, 그리고

갑자기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지치고 염세적인 표정.


낼모레 사십 인 사람으로서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반짝반짝한 눈과 웃는 표정이 사라지고 이렇게 보기만 해도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사는 내 모습이 너무너무 싫고 안타까웠다.


행복이라는 거창한 감정까진 아니더라도, 에너지와 의욕, 그리고 총기가 넘치는 표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를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꿈과 성장


난 항상 꿈이 많은 사람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좋은 기업에서 번듯한 대우를 받고 일하고 있고, 딸도 잘 키우고 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여행, 골프, 와인, 러닝, 크로키 등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그렇기 때문에 난 재밌게 의미 있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루고 싶은 큰 꿈들, 나를 크게 성장시켜 줄 일들은 정작 이루지 못하고, 항상 “다음에”라고 말하며 미루고 사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작가가 되어 내 책을 내고 싶고, 오래된 집을 사서 멋지게 레노베이션을 하고 싶고, 나만의 사업체를 열고 싶고, 5개 국어를 하고 싶고, 지금껏 해본 일들과는 전혀 다른 계통의 일을 해보고 싶고..


물론 직장을 다니며 이런 꿈들을 이루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n잡러로 일하면서, 시간을 쪼개 쓰며 야무지게 그들의 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지난 몇 년 동안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다짐을 몇 번이고 했다.

하지만, 나약한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퇴근 후 나에게 그런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고, 더 중요한 것은 하고 있던 일이 나의 꿈들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는 기술/기회를 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하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