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분에 건설현장에서 찐 노동자로 1년을 보낸 아들 녀석은
그렇게 번 돈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독일 베를린으로...
https://brunch.co.kr/@mongpari/31
독일로 워홀을 간 건 순전히 나의 추천 때문이었다.
그 추천의 이유라는 게 너무 하찮아서 설득이 될까 싶었지만 그 녀석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유라는 게 고작
...
그냥 호주나 캐나다는 아닌 것 같고
영국은 너무 비싸고 프랑스는 너한테 안 어울리고
독일이 뭔가 너한테 어울리면서 선진적인 나라니까 괜찮지 않겠니?
이건 뭐 중학교를 지리산에 있는 대안학교에 갈 때처럼
무대뽀 논리가 아니었나 싶다.
암튼
코로나 전부터 따지면 독일어를 거의 10개월 정도 독학도 하고 과외도 받고 학원도 다니고.
비자 준비부터 떠나는 것까지 전부 혼자 알아보고 돈도 모아서
2022년...그렇게
그 녀석은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나도 몰랐다.
워킹홀리데이라는 것이 무슨 취업자리나 일을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비자만 길게 나온다는 것!
(독일의 워홀 비자는 1년)
모든 걸 알아서 준비하고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떠날 때 내가 당부했던 말은
1년동안 숨만 쉬고 와도 좋으니까...건강하게 잘 지내다 와!
...였지만
내심 다른 의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고등과정 일찍 마치고 검정고시 보고나서
알바 해서 번 돈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오고.
군대 다녀오고.
또 알바 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서 유럽 다녀오고.
어딘가를 다녀올 때마다
이제는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겼겠지?
...슬며시 눈치를 봤지만 별다른 계획이 서지 않는 것 같아 추천했던 워킹홀리데이.
.
1년동안 건설현장에서 찐 노동자로 살고나서 떠나는 것이니
말은 그렇게 부담 안주려 해도 속으로는 솔직히 그렇지 않았다.
떠나는 녀석에게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아서
"숨만 쉬고 와도 돼^^"
...라고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1년동안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 기간동안 들려온 소식은 평범했다.
장소가 힙한 베를린이었을 뿐 여느 워홀러과 마찬가지로 어학원 다니면서 한식당에서 일하기.
이럴거면 굳이 베를린으로 갔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평범했던 일상의 소식만 이어졌다.
독일에 간 지 4개월, 6개월.........8개월이 지나도록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밖에 들리지 않던
워홀의 시간이 다 가던 중
거의 1년이 다 되었을 때 마침내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뭔가를 하겠다는......!!!
<아우스 빌둥>에 지원해 보겠다는 것.
워홀이 끝나도 독일에 계속 있고 싶은데...
이 녀석은 수능을 친 적도 없고 대학을 다닌 적도 없으니 계속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 한정적이었는데
<아우스 빌둥>은 대학을 안 가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니 가능한 선택지였다.
.
<아우스 빌둥>은 독일에만 있는 시스템이라 개념이 좀 어려운데
회사이자 학교같은 뭐 그런 것이다.
일단 회사에 지원을 해서 그 회사에 합격을 하면 인턴처럼 3년동안 매달 소정의 보수가 나오고
한달에 2주는 그 회사의 일을 하고 1주일은 센터에 가서 기술을 배우고 1주일은 학교에 가서 이론을 배우는 그런 방식이다.
한마디로 산학협동으로 기술을 배우는 회사이자 학교같은 것.
배우면서 돈도 받으니 얼마나 좋아...라고 할 수 있지만
2주동안은 그 회사의 일을 하는 것이니 회사에서는 싼 값에 노동력을 사는 것이고
학생들은 현장에서 일도 하면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니 경험을 쌓는 것이고
서로 이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또한 혼자 알아서 다양한 직종과 여러 회사를 알아본 후 개인적으로 지원을 하는 건데
이것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참... 이 소식을 듣고나니
아무 연고도 없는 유럽의 도시에 한번 살아 보라고 권유한 나도 그렇고
그걸 또 혼자 가서 알아서 잘 살더니 자기 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낸 아들 녀석이
기특하기도 하고 새삼 대단해 보였다.
결심을 하고나서
첫번째 지원한 회사에서는 보기좋게 떨어졌고
언어등급을 한단계 더 올리고나서 지원한 두번째 회사에서 합격소식이 들려왔다.
거의 워홀 기간이 끝날 때 쯤이었다.
가구&인테리어 목공 회사!
(독일에서는 가구 목공과 인테리어 목공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기술이 있었지만 원래부터 관심있던 목공회사에 지원해서 합격한 것이다.
합격해서 그 곳에 다닌 지 올해 9월이면 벌써 만2년이 된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제 3년차 때는 졸업작품을 해야하고
회사에 나가는 2주 동안은 여느 K-직장인과 다름없이 스트레스가 많아 힘들어 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벌써 독일에 간 지 만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는 졸업해도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한다.
...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코로나 때 한국에서 찐 현장경험을 해 본 것이 큰 자산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설현장 경험.
그 때 배운 것이 지금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국으로 안 돌아오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한 경험.
이 녀석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지
어려움은 어떻게 헤쳐나가게 될 지
기대도 되면서 숨죽여 지켜보게 되는 그런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