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건축... 그렇지 않은 삶,
훈데르트 바서

오스트리아 빈

by 몽파리

집구석에 무기력하게 처박혀 있던 나를 손 잡고 끌어내준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걱정이 되셨는지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집까지 찾아오셨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고

그날 밤...

다음날 가시는 곳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며 나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너무나 무기력한 말투로 생각해 보겠다고 했더니

(아니 바로 다음날 일정인데 생각해 보기는 뭘 생각해 봐... 집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는 거지!)


이튿날 나의 의견은 재차 묻지도 않으시고 손을 붙들고 가시는 곳까지 데리고 가셨다.

그렇게 나는 며칠 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


그곳은 "북"을 배우는 곳이었다.

사물놀이의 바로 그 북!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북"이란 것에... "북"을 배우는 것에...

내가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살짝 젊은 시절 로망이었거든 "북"을 배우는 것이


어쨌든 얼떨결에 찾아간 곳에서 쭉 "북"을 배우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을 하게 되었고

그 외출은 3년이나 이어졌다.


사부님께서 얼마 안 있다가 특별히 취미반을 새로 만드셨다.

(전문가반에 초짜인 내가 껴있던 게 방해가 되었겠지... 실제로 그게 불만인 사람들도 있었고!)

.

사부님의 명성에 취미반은 없던 일인데 회원은 단 세 명.

그 세 명을 위해 취미반을 유지하셨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리의 지친 영혼을 위해 거의 재능낭비를 하신...ㅠ.ㅠ)

셋 다 뭔가 치유가 필요해서였을까...

서로 맞는 거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성격도 성향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명이 오랜 기간 같이 "북"을 배웠으니

우리도 어지간히 삶이 힘들긴 했었나 보다.

그중의 한 명이 그림 그리는 동화작가였는데

작업실이 집에서 멀지 않아 가끔 놀러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갑작스레 예술의 전당으로 같이 전시를 보러 가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된 건축가"훈데르트 바서"

.

건축이 전공이지만 당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던 이름.

무척이나 생소하고 낯선 이름이었다.

주류가 아니라는 생각이어서 그랬을까!

오히려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던 전시.

아무 정보 없이 찾아갔지만 새롭게 알게 된 건축가이자 화가이자 환경운동가였던 바서의 전시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색감에 역동성 있는 그림은 빨려들만큼 생동감이 넘쳤고

처음 보게 된 건축 모형 작품은

이게 진짜! 실제로! 지어진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독특했다.

너울거리는 곡면과 유기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물은 직선이 하나도 없었다.

화려한 색채감과 독특한 형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한마디로 재미있는 건축이었다.


건축물은 재미있었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은 묵직했다.

작품은 꿈을 꾸듯 몽환적이었지만 현실에선 투쟁적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이상을 현실에 담고자 노력했던 그의 숭고한 삶이

전시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북"을 배우면서 한 발짝씩 밖으로 내딛던 발걸음은

멀리멀리 외연을 넓히면서 그로 인해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되었다.

궁금했던 그의 작품을 몇 년 후에 직접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

2016년 초 오스트리아를 가게 되면서 5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 <빈>에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이 있었지!!!

지금이야 환경문제로 <슈피텔라우 소각장> 등 알려진 건축물이 있고

여기저기 노출이 되어서 꽤 많이 찾는 곳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별로 정보가 없던 곳이었다.

순전히 전시에서 봤던 기억으로 건축물을 찾아냈고

구글지도를 100% 믿지 않던 시절 종이지도를 들고 건물을 보러 갔다.


<빈>에서 여러 곳을 가고 싶었지만

가장 궁금했던 <블루마우 리조트>는 너무 먼 도시에 있어 모형을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슈피텔라우 소각장>은 빈 도심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멀다는 핑계로 패스했다.

이제 남은 건 두 곳.

이름도 헷갈리는 <훈데르트 바서 뮤지엄><훈데르트 바서 하우스>

빈의 "링"이라 불리는 도심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았다.



두 건물은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는데

두 건물 중 북쪽의 뮤지엄을 먼저 가는 게 낫다.

그렇게 했다.


Kunsr Haus Wien

훈데르트 바서 뮤지엄


입구에서부터 외관... 불규칙한 창문, 타일 장식, 나무와 담쟁이넝쿨

모든 게 전시에서 보았던 그대로 자연을 닮으려는 듯 독특한 형태를 가졌다.



입구의 기둥 하나하나도 서로 다른 모양으로 뭐 하나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직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만연했던 기능주의 건물들...

도시의 메마른 건물들이 자연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인간과의 공존을 헤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연의 굴곡을 그대로 인용한 듯 바닥의 단차도 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들어가면 있는 데스크에서 입장권을 사고 계단으로 먼저 올라갔다.

https://www.kunsthauswien.com/en/visit/opening-hours-admission



계단의 모습부터 재미있었다.

여러 요소들이 섞여 있어 산만한 듯 과한 듯... 정신 사납기도 했지만

흥미롭고 인상적인 건 분명한 듯했다.

상부 천장에서 내려오는 따뜻한 조명이 이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전시 작품의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그림, 건축모형, 판화, 태피스트리 등 "훈데르트 바서"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가 있으니

직접 그 생동감을 느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바서의 전시뿐 아니라 다른 전시도 항상 열리고 있으니 위에 걸어놓은 링크 홈페이지를 참조해서

보러 가면 좋을 것 같고...


전시를 충분히 즐기고 내려와서

(그런데 전시 자체는 예술의 전당에서 보았던 게 더 알찼던 거 같아ㅎㅎㅎ)


미술관의 마침표인 카페 공간 즐기기!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많았던 훈데르트 바서의 철학과 어울리게

자연이 그대로 내부에 들어온 듯했고 오스트리아 전통 디저트인 '아펠슈트루델'은

커피와 함께 <빈>이라는 도시를 맛보게 했다.



화장실을 보는 즐거움도...^^



오래전이지만 다 그대로이지 않을까 싶고

이제 그의 또 다른 작품, 공공임대주택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로...


Hundretwasser House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만 실망한 것일까...

2월이라 그랬던 것일까?!

공공주택이라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중정 쪽은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색채를 입힌 건물이었지만 그 채색이 유지되지 않아서

가까이서 본 건물은 사진과 같지 않았다.

... 오히려 더 칙칙하게 보였다.


하지만 의미 있는 공공임대주택.

각각 설계가 달라 보이는 세대들은 창문과 발코니가 불규칙했고

옥상에는 정원이 있어 보였으니 건축가의 철학은 충분히 담겨있는 건물이라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거주하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하니 그걸로 된 거지!



바로 앞 필로티의 바닥은 곡면으로 너울거리고 있었고 기둥이며 출입구며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타일로 변화 있게 장식되어 있었다.

기둥은 저마다 화려했다.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 탓이었는지

바로 앞에 Hundretwasser Village

공식샵이 있는 건물이 있었는데

상술로 있는 기념품 가게인 줄 알고 들어가 보지 않았다.

아마 비슷비슷해 보여 딱히 들어갈 이유를 못 느낀 것 같다.


누가 보러 가도 재미있어 보이는 건축.

여느 건물들과 달리 도시에 표정을 만들어주는 건축.

하지만

재미있다 특이하다로만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의 깊이있는 사상과 철학.

그 안의 진정성을 꼭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정말 거기까지 간 김에 가 본 건축물이다.

우연찮게 본 전시는 몇 년 후에도 위력을 발휘했으니

무엇이든 눈앞에 떨어진 기회는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잡는게 이득인 것 같다.

.

"훈데르트 바서"를 보면 "북"이 떠오르는 묘한 연결고리에

문득 신명나게 "북"이 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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