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데사우/ 독일 바일암라인 비트라
시간만 주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혼자만의 취미가 넘쳐나지만
평생 동안 피해왔던 행위 중 하가 "동아리나 소모임에 가입하기"이다.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에 끼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정해진 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여러 분야에서 나의 활동반경이 넓지 못한 것에 대해
소심함으로 자책했던 수십 년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자책의 시간들이 억울할 만큼 그런 나를 정상인으로 여겨주는 단어가 생겼다.
내향인...... 그것도 조금 부족하다면 극내향인이라는 좋은 단어가 생겼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이유 중에 하나도 분명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어서 일 것이다.
집에서도 혼자 지내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누군가 옆에 있는 일상이 상상도 안 되는 거처럼... 여행도 그러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뿐 아니라 건축물을 보러 다닐 때
간혹 도슨트가 있는 투어 신청이 있는 경우가 있다.
투어 신청을 꼭 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히 무조건적으로 피하고야 말지.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무리에 섞여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내 맘대로 건물을 보는 시간을 쓸 수가 없고 정해진 시간을 지켜야 하는 것이니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다.
도슨트 투어가 있는 건축물 보기
그래서 고민도 안 하고 도슨트없이 혼자 다니다가 폭망했던 건축물.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독일을 남부부터 가로질러 올라가는데 어떻게 이 건물을 놓칠 수가 있겠나 싶었다.
올라가면서 하루정도 묵고 갈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긴 여행으로 인해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하는 행위에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냥 베를린으로 바로 올라가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로피우스의 설계 건물에 엄청난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다.
워낙에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이니 약간의 의무감이 있었던 거지
바우하우스 자체에 대한 흥미가 크게 있지는 않았다.
베를린에서 데사우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데사우 기차역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바우하우스 본관 건물이 나오는데
가는 동안의 도시 분위기는 괜찮았다.
도시 전체가 바우하우스 캠퍼스 분위기라더니 역시나였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으면서 뭔가 조용하고 차분한 게 기분 좋은 안정감을 주었다.
그렇게 금방 도착한 후에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했다.
그런데 이 날따라 직원의 영어가 정말 잘 안 들렸다. 안 그래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이날 유독 심했다.
대충 미리 정해놓은 입장권으로 보이는 걸 구매했고
당연히 도슨트 투어로는 구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표소에서 나가자마자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데 직원이 따라와서 나한테 뭐라 뭐라 한다.
그 직원은 이미 표를 구입할 때부터 짜증이 섞여 있었다.
내가 자기 설명을 한 번에 잘 못 알아들으니까 대놓고 불친절한 후였다.
당시에 사진촬영이 포함된 입장권이 있었는데 그게 없는 걸 샀으니 사진을 못 찍는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다. 지금도 내가 정확히 어떤 입장권을 산 건지 그 직원이 뭐라고 한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게 무슨 의미였든 어쨌든 그때부터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사진은 안 찍어도 되니까 건물이라도 제대로 보자라는 심정으로 전시도 대충 건너뛰고
본격적으로 건물을 보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내 정말 큰 문제가 생겼다.
예상치 못했다.
그렇다. 이 건물은 지금도 사용 중인 건물이다.
개방되어 있는 복도, 홀 말고는 내가 어디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복도에는 중간에 큰 문이 있었는데 문이 열리긴 하는데 내가 들어가 봐도 되는 건지~
강의실은 전부 닫혀 있는데 열어봐도 되는 건지~
지금 누가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어느 한 곳도 마음 편히 열어볼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소심한 성격에 물어보지도 못하고 어느 공간이든 잘못 열었다가 혼이 날까봐 시도도 못하고
안 좋았던 기분은 점점 더 식어서 건물에 대한 흥미가 싹 사라졌다.
그렇게 건물을 더 보는 거는 포기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거기서 도슨트에게 해설을 듣고 있는 한 무리를 만났다.
아.................. 그렇다!
이런 건물은 필히 저렇게 도슨트와 함께 다녔어야 했다.
정녕 설명을 전혀 못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무조건 같이 다녀야 구석구석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었겠구나!
아차 싶었다.
실제로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공간까지 가 볼 수 있다 하니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 무리에 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건물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기대했던 굿즈샵도 그냥 지나칠 만큼 속상했다.
도슨트 신청을 안 한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본관 건물은 그렇게 나오고 말았다.
속상했던 마음은 <마이스터하우스>로 달랬다.
아무 방해 없이 혼자 온전히 볼 수 있었던 <마이스터하우스>는 새로운 발견이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그날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데사우로의 외출은 그렇게 끝났다.
허무하고 속상한 마음이 잘 달래지지는 않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도슨트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는 걸 깊이 깨달으며 베를린으로 향했다.
홈페이지... 입장권에 대한 최신 정보를 꼭 확인하고 가기를 권함
https://bauhaus-dessau.ticketfritz.de/en/Home/Index
반대로 가끔은 도슨트없이 건물을 보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심지어 미리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기도 하다.
두 가지 경우를 다해야 한다면 보는 것마저 포기하기도 하는데
정말 포기가 안 되는 건물이라면 어쩔 수 없이 무리에 껴서 우르르 다닐 각오를 해야 한다.
그치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고민거리도 없어 오히려 편하다고 할까.
<비트라 캠퍼스>가 그런 곳이다.
바젤에서 55번 버스를 타고 이름도 멋진 Vitra역에 내렸다.
정말 정문 코앞에다 내려준다.
사전에 검색해 보니 여기는 도슨트 투어 신청을 해야 내부까지 관람이 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매표소에서 도슨트 해설이 포함된 건축투어 티켓을 구매했다.
영어 해설 타임이 두 번 있었는데 늦게 가는 바람에 두 번째 투어를 신청했다.
영어 해설과 독일어 해설이 다른 곳에서 출발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나는 샤우데포트에서 출발하는 투어라 겁나 열심히 걸어갔다.
(현재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도슨트 건축투어 횟수는 평일과 주말이 다르고 투어 시간도 달라졌다.
홈페이지에서 꼭꼭 확인하고 온라인 예매를 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https://www.vitra.com/en-un/campus/visit
굳이 건축물을 볼 생각이 아니라면
티켓 없이 볼 수 있는 곳도 많으니 그래도 되고
취향에 맞게 디자인 뮤지엄이나 샤우데포트의 전시회 티켓을 구매해서 봐도 좋고
건축 이외에 다양한 투어도 있으니 원하는 걸 신청해도 좋을 것 같다.
한마디로 필히 홈페이지로 꼼꼼하게 공부(?)하고 가기를 권한다.
암튼 이 때는 11월이라 비트라 캠퍼스 내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도슨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둘러볼 시간은 없었고 바로 출발 장소로 향했다.
무리에 섞일 생각에 잔뜩 긴장을 하고 갔는데...
그 무리가 나 포함해서 단 2명이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그렇게 3명이서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듣는 사람이 2명밖에 없다 보니 너무 이목이 집중되고
난 영어를 잘 못해서 거의 못 알아듣는데도 알아듣는 척 끄덕끄덕 해줘야 하고
사진을 찍을라 해도 2명만 따라오면 되니 자유시간이 거의 없어서 후다닥 몇 장 찍고 재빨리 따라가야 했다.
.
게다가 같이 다니신 분이 북유럽 쪽이었던가 중년의 남자분이었는데 되게 냉담했다.
다른 데서는 보통 이런 분위기에 외국인들이 먼저 인사도 나눠주고 살갑게 웃어주곤 했었는데
마치 동양 여자 혼자인 게 스스로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거처럼 친절했었는데
그분은 약간 나를 약간 무시하는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뭐 친절한 건 의무가 아니니까 잊어버리고
이래저래 불편한 점은 있었으나 그날 도슨트는 건물 속속들이 안내도 잘해주셨고
영어발음도 나름 정직해서 얼마간 알아들은 것 같다.
다소 도슨트에 따라 안내의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특히 SANNA 설계의 건물은 공장 내부까지 들여보내 주기 때문에 직원들이 작업하는 걸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좋았고
(사진촬영금지이며 입구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자하 하디드의 소방서 건물 내부도 설명과 함께 다 볼 수 있었고
(사진 찍을 시간 없이 너무 빨리 진행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서 내부 사진이 한 장도 없지만)
안도 다다오의 건물도 꼼꼼하게 잘 설명해 주어 인상적이었다.
알바로 시자의 건물에 대해서는 딱히 소개도 안 해주면서 둘러볼 기회를 안 준 것은 좀 아쉽다.
특히 팜플렛의 지도를 보면 사람이 진입할 수 없게 막아놓은 구역이 있는데
투어신청을 하지 않으면 아예 접근이 안 돼서 외관조차 못 보는 건물들이 있다.
SANNA 설계의 건물이 특히 그렇다.
어느 건축가의 작품이 어디에 언제 지어진 건지는 대략 이 지도를 보고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수년 전 방문 때 받은 팜플렛이지만 참조는 될 것 같고 그 사이에 지어진 시설이나 건축물들은 추가해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2시간여의 투어를 마치고 나니 남은 시간이 넉넉치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 유료 티켓에 포함된 건물을 봐야 할 것 같아서
Herzog & de Meuron 설계의 <Vitra Shaudepot 샤우데포트>를 보고
바로 옆 카페 <Depot Deli> 에서 잠깐 끼니를 때우고
엄청 빨리 걸어가서 일단 프랭크 게리 설계의 <Vitra Design Museum> 과 갤러리를 보고 나니
금방 해가 졌다.
아........ 정작 모두가 다 보는 <VitraHaus> 는 하나도 보질 못했고
렌조 피아노의 <Diogene> 나 전망대 등등 작은 건축물, 구조물들은 찾아가 볼 시간도 없었다.
진심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건축 투어 시간만 고려하지 말고
하루의 모든 시간을 투자할 생각으로 와야 한다.
정말 그래야 한다.
다시 또 가 볼 기회가 있을까?
다음에 가본다면 진심 날씨 좋은 날 가서 외부의 모든 시설을 다 즐길 것이다.
새로 지어진 건물도 있고 새로 생긴 투어도 있어 모든 걸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