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나의 아들은 건설현장 노동자입니다.
자식농사
한창 아이가 크던 시기에는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집 자식농사 이야기가 자주 들리곤 했다.
"저 집은 자식을 참 잘 키웠어!"
잘 알지도 못하는 집의 자식농사 이야기라는 게 결국은 다 이런 거였다.
"저 집은 사교육도 많이 안 시키고 공부를 시켰는데 서울대를 보냈더라."
"저 집은 어릴 때부터 애들을 잘 놀게 했더니 자식들이 전부 명문대를 갔더라."
"저 집은 엄마가 책을 많이 보니까 애들도 책을 많이 봐서 좋은 대학을 갔더라."
요약하자면 뭐 대충 다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앞부분의 이야기만 해도 충분할 것을 뒤에 꼭 좋은 대학을 갔더라... 가 붙는 것을 보면
저들에게 '자식을 잘 키웠다 = 좋은 대학을 보냈다' 와 같은 의미인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들에 나는 늘 씁쓸해했고 물론 귓등으로도 유심히 듣지는 않았다.
오늘 포털에서 '도배사가 된 명문대생 20대 여성'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나는 반갑기도 했고 너무나 진심으로 응원을 해주고 싶어서 좋은 댓글마다 좋아요를 꾹! 꾹! 눌러 주었다.
그렇다.
나의 아들도 25세의 건설현장 노동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들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니 신기할 일도 아니고 뉴스를 탈 일도 아니지만 25살의 젊은 청년도 요즘 현장에서는 드문 일이라 그 기사가 매우 반가웠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어찌어찌하여 (너무 긴 얘기라) 입시공부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20세에 넣을 수 있는 전형이 하나 있어 별 준비 없이 대학 전형을 넣어 보았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다.
군대를 다녀와서 워킹 홀리데이를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가 터져서 비행기표를 취소했고
지금은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목수일과 기타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다 배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마디로 잡부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중학교 때 목공을 배우면서 목수가 되고 싶다고 하였으나
목수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나서도 할 수 있으니 다른 경험을 많이 해보자 했다.
그랬더니 18살에 느닷없이 꿈이 대통령이라고 폭탄선언을 하였고
나는 8살짜리 꿈이 대통령인 건 봤어도 18살짜리 꿈이 대통령인 건 처음 보았다며 웃어넘기려 했지만
이 녀석은 나보고 SNS 관리를 철저히 하라며 진지하게 당부를 했다.
물론 나는 너나 잘 하자...! 라고 받아쳤고 딱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생산적인 노동일을 꼭 해야 한다고!
지금도 그 꿈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서워서 못 물어보고 있다.)
혹시 내가 그때 그런 이야기를 해서 현장일을 하는 건가!라는 소름 끼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이 녀석은 지금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다행히 내가 밑바닥 설계판에서 일하고 있어 아는 분들을 수소문하였다.
우리 동네에 처음 시작하는 현장을 하나 찾아냈고 올초에 그 현장에 투입이 되었다.
처음에는 형틀목공일부터 시작을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요즘 현장에는 나도 진짜 놀랄만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관리자 말고 직접 몸을 쓰는 일꾼들 중에 한국인은 이 녀석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처음 오시는 다른 공정 사장님들는 이 녀석에게 꼭 '너 중국인이야 조선족이야' 라고 물어보는데
한국인이라고 대답을 하면 진짜 한국사람 맞냐며 재차 물어보고 굉장히 의아해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알바하러 온 게 아니라 현장일을 배우러 왔다고 하니 보는 사람마다 특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행히 연배 있으신 기술자분들 소장님들 같이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젊은 놈이 현장을 찾아온 게 기특해서인지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잘 챙겨 주시고 항상 이뻐해 주시는 것 같다.
은퇴할 때가 다 되었는데 기술을 가르쳐 주고 싶어도 가르쳐 줄 젊은 사람이 없고
이 녀석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도 이 분들이 다 현장을 떠나고 나면 이 다음은 누가 이어받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중간 나이대의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처음에 형틀목공일을 하다가 지금은 내장일이 시작되어서 내가 굉장히 신뢰하는 목수님께 내장목수일을 배우고 있다. 조적사장님이 오시면 조적일도 배우고 자재 옮기라고 하면 자재도 옮기고 온갖 시키는 일은 다하면서 각종 잡부로도 일 하고 있다.
오늘 같이 무더운 날.
혹시라도 젊은 마음에 남들은 다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땀 한 방울 안 흘리며 일 하는데... 라며 일반화된 다른 이들과 스스로를 비교할까 봐 가끔 걱정이 되는데 저녁 늦게 집에 와보니 열심히 벌은 돈으로 치킨 시켜 먹고 꿀잠 자고 있는 거 보면 일단 걱정은 없어 보인다.
내가 자식 잘 키웠다고 소문날 일도 없고 뉴스에 나올 만큼 특별할 것도 없지만
언젠가 이 녀석이 나중에는 이런 블루오션 일을 어떻게 일찍이 알아보고 시작했냐며 주변에서 부러움을 살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며 나도 오늘은 꿀잠을 청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