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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Apr 02. 2020

변화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남자들의 자기 연민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박정훈


훌륭한 책.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다양한 지점들을 명쾌한 논리로 풀어내는 책이다. 구석구석 새겨둘 구절이 많다. 여기서는 이 중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두 가지 주제에 대해 기록해보겠다.



한국 남성의 자기 연민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피하는 방법일 뿐이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재미있는 지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남성들이 “우리들도 (혹은 우리가 더) 약자다”라고 항변한다는 점이다. “메갈”에 대한 증오부터, “페미니즘”이 아니라 “이퀄리즘 (평등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물론 미국-유럽에도 “anti-feminist” 운동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같이 어떤 집단 (e.g. 20대 남성)의 ‘주류 사상’이 되지는 못한다.


(이와 관련해서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가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20대 남자에 대한 흥미로운 리포트가 있다. 밑의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zf-XcUZVy0


저자는 이를 “집단적 자기 연민”이라는 용어로 간결하게 설명해낸다.


> 한국 남자를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은 ‘집단적 자기 연민’이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을 ‘피해 보는’, ‘약자의’ 위치에 놓으며 스스로의 악행 혹은 찌질한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강자성’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니 더욱 문제다.. (p.77)


한국 남성들의 자기 연민은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육지책일 뿐이다. 변화하기 전 사회에서는 “남성”이라면 해야 하는 것 (경제적 부양) “남성”이 가질 수 있는 것 (가사노동으로서의 자유, 전반적 우대) 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 사회와 가정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그래서 자신의 가치관과 (무덤덤한) 성격조차도 이에 맞춰져 있는데, 갑자기 세상이 바뀐 것이다. 


> 가부장제 사회는 여전히 정상 가족을 만들어 가족을 지키고 생계를 부양하는 “남자다움”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자다움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편적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남성들은 “피해자 되기” 방식을 택한다……
김유정이 박녹주의 인력거를 세워 죽이지 않겠다고 한 뒤, 기껏 뱉은 말은 “너는 혹 내가 돈이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나를 피하는 거지?” 였다. 자신을 무시당하고 멸시받는 피해자로 믿고 자조하면서도, 동시에 가해할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 힘을 발휘하는 것, 이것이 한구 남성들이 가진 모순이다. (p.32-34)


> 여성들은 자기 삶을 잃고 매일 고개 숙여 왔는데, 사회가 집중하는 건 ‘남성이 기죽는 일을 막는 것’뿐이다…[한국 남자들은] 자신의 위치나 자신이 가진 권력에 대해 부지한 나머지 자기 연민에 빠져 남을 귀롭힌다. (P.81)


> 내가 느긋하고 둔감한 사람이었기에 종종 주변 여성의 모습은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며, ‘불필요한 것까지 신경 쓰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속편하고 느긋하게, 큰 감정 기복이나 불안 없이 살 수 있는 이유에 ‘남성으로서의 특권’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P.47)


이런 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반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남성들의 ‘군대’에 대한 인식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이 명백하게 “차별”받는 지점은 “병역에 대한 의무”이다. 자기 생의 가장 소중한 시절 중 2년을 무의미하게 날려버리고 있으니. 그런데 막상 그들이 병역에 대한 불만은 그렇게 큰 것 같지 않다. 이는 그들에게 군대가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한 일종의 훈장이기 때문이다.


> 분명 한국에서 잚은 남성이 고통받는 가장 큰 원인은 군대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남성이기 때문에” 겪는 가장 극심한 폭력이 군대 아닌가? 하지만 역차별론을 주장하는 남자들은 군대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나 보상이 아닌, ‘군대 그 자체’가 주는 고통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답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권력관계를 가지는 새로운 사회에 걸맞는 개인이 등장해야 한다. 새로운 남성의 상, 아니 새로운 개인의 상이 등장해야 한다. 시작지점은 “누구하고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인간상”일 것이다. 아내와 친구를 맺는 남편, 자식과 친구를 맺는 부모, 며느리와 친구를 맺는 시어머니. 동등한 권력관계를 기본으로 하면서 서로를 위해 줄 수 있는 관계를 맺는 사람이 새로운 시대의 인간상이다.


> 근본적으로 남성들의 ‘피해자 되기’를 막으려면, 보편을 원하거나 좇지 않고 여성을 타자화하지도 않는 남성성 모델이 끊임없이 등장해줘야 한다.  (p.34)



반지성주의: 쉬운 글은 낡은 생각일 뿐이다.



이 책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두 번째 주제는 “반지성주의”가 여성운동에 미치는 양면성이다. 사실 19세기에 반지성주의는 반권위주의와 연결되면서, 여성해방운동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 책 [반지성주의] 를 쓴 학자 모리모토 안리는 빈지성주의가 미국의 개신교와 결합하면서 19세기 여권 신장 운동과 노예제 폐지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또 이 흐름이 20세기에는 민권 운동과 소비자 운동으로 이여졌다고 강조한다. 즉, 반지성주의가 무조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엘리트가 독식한 지식과 부당한 권위에 대한 저항의 모멘텀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므로 반지성주의와 반 권위주의가 엮이는 것은 당연하다. (p.165)


그런데 21세기에는 반지성주의가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 이에 대해 손희정 문화 평론가는 <어용 시민의 탄생: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반지성주의>라는 글에서 “반지성주의는 초창기에는 ‘진실을 말할 권한’을 승인받은 엘리트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점에서 권위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그러나 이 저항의 끝은 합리적인 비판 의식이 아니라 ‘나도 너만큼 똑똑해’라는 나르시시즘 (톰 니콜스 인용)” 이라고 진단한다. (p.165)
> 그런데 어렵고 낯선 것은 주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결국 소수자-약자의 이야기 아닌가? 여성학자 정희진 역시 2013년 2월 <경향신문>에 기고한 <쉬운 글이 불편한 이유>라는 칼럼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사회적 약자의 언어는 드러나기가 쉽지 않아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폭력으로 가정이 깨져서 문제가 아니라 웬만한 폭력으로도 가정이 안 깨지는 게 더크 문제가 아닐까요?’ 이렇게 반문하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어렵게 들리는 것이다.
나는 주식이나 자동차 분야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글을 읽을 때 문지한 내가 문제지, ‘어렵게’ 쓴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학)의 글일 경우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거리낌 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라’고 요구한다. (p.172)


반지성주의의 어떤 점이 이런 양면성을 일으키는가? 권위에 대한 저항과 결합되어 긍정적 힘을 발휘할 때, 반지성주의는 “지식의 보편화”를 목표로 한다. 지식과 정보를 특권층이 독점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고, “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논쟁하는 것”을 추구한다. 일종의 상향평준화이다.


하지만, 반지성주의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어려운 말”을 “권위적인 말”과 동일시할 때 발생한다. 새로운 생각은 당연히 어렵고 불편한 생각일 수 밖에 없는데, 잘못된 반지성주의는 이를 “어려운 생각은 필요없다”라는 식으로 무시해버린다. 합리적 논쟁은 사라지고 쉬운 말로 가득한 선동만이 남게 된다.


반지성주의는 새로운 물결의 편에 설 수도, 혹은 그 반대편에 설 수도 있다. 이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는 2018년 10월, 이와수 작가의 <단풍>에 대해 “어떤 금가를 위반하는 일이 새로운 윤리를 만드는 일이 될 때 문학의 금기 위반은 정당화될 수 있다. 반면에 어떤 금기는 그것을 위반하는 일이 오리혀 낡고 타락한 기성의 윤리를 옹호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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