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배신], Cal Newport
장인의 마음가짐으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기
(이 책 역시 영어판 (원제: "So good they can't ignore you")을 읽었다. Cal Newport는 문장이 군더더기가 없어서 영어로 읽기 어렵지 않다.)
매우 불편한 책. 삶을 사는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 불편한 법이다. 개인적으로 커리어에 변화가 생기는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되어 마음이 매우 심란했다. 컴퓨터공학자답게 Cal Newport의 문장들은 절대 에두르는 법이 없다. 화살처럼 꽃히는 그의 문장들에 잠시 휘청거리다가 정신을 가다듬어본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언젠가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축사 동영상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찾아가세요, 열정을 쫓으면 언젠가는 모든 점들이 이어집니다’ 로 거칠게 요약되는 그의 ‘connecting the dots’ 이야기는 몇 년 동안 내 일기장에서 거듭 인용되곤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의 시작을 스티브 잡스의 위 얘기에 대한 전면적 부정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최근
20년간 사람들을 휩쓸었던 생각—“너의 열정을 쫓아라”—을 “Passion Hypothesis”라고 정의하고, 이 가설이 근원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The Passion Hypothesis: The key to occupational happiness is to first figure our what you’re passionate about and then find a job that matches this passion. (p.4)
“Follow your passion” might just be terrible advice. (p.6)
저자는 실제로 “열정”을 따라 나선 많은 사람들이 결국 새로운 직업에서도 “완벽한 열정”을 찾을 수 없어 금세 그만두곤 하는 예들을 보여주며, 열정 가설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저자는 젊은 세대의 직장 만족도, 더 나아가서는 삶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낮아졌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주된 원인이 바로 “열정 가설”이 범람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한마디로 “열정의 배신”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우리가 ‘노오력’이 부족한 것인가? 이 책의 진가는 여기서부터 더 빛을 발한다.
“우리가 원하는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나에게 딱 맞는 “천직”을 꿈꾸는 게 아니다. 나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명망있는활동가가 된다면 괜찮을 것 같고, “능력이 뛰어나 업계에서 대접받는” IT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자기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대학교수 역시 나쁘지 않다. 요점은, 어떤 길을 가든지 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야 내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통찰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커리어 혹은 직업은 다음 세 가지 속성을 갖추고 있다:
1. Creativity: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음
2. Impact: 세상에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
3. Control: 내 의지에 따라 작업의 강도와 일정을 조정할 수 있음
저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속성을 갖추고 있는 직업은 이 세상에 많지 않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직업을 가지기를 원한다. 경제원론의 수요-공급 원칙을 대입해본다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냉혹한 말이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수요쪽이 아니라 공급쪽으로 눈을 돌려보라고 말한다. 저들이 원하는 건 무엇인가? 결국은 뛰어난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지금 커리어의 밑바닥에서 꾸준히 좋은 아웃풋을 만들어낼 때만 만들어진다.
> ….the traits that define great work are rare and valuable. If you want these traits in your own life, you need rare and valuable skills to offer in return. I called these rare and valuable skills career capital, and noted that the foundation of constructing work you love is acquiring a large store of this capital. (p.100)
행복한 커리어의 또 다른 필수요소는 사명이다. 사명이 존재함으로서 나의 작업에는 명확한 방향이 생기고, 그 방향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줄 때 내 커리어는 더 바람직한 것이 된다.
하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는 사명은 공허하다.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때려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며 준비없이 블로그를 시작하는 사람의 사명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실현가능성이 있는 사명을 만들려면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렇다, 사명 역시 마냥 고귀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전략적으로 효과적인 사명을 만드는 기술은 이 책의 이전 부분보다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하다: 저자는 여러 주문을 던진다.
1. 좋은 사명에는 career capital이 필요하다.
2. 사명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작은 프로젝트들을 던져봐야 한다.
3. 다른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팔릴 수 있는” 사명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극받은 점은 저자의 생산성이다. 저자는 computer science로 MIT에서 박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잡마켓에 나왔을 당시 두 달 가량 시간이 비는 틈을 타서 이 책의 첫 장을 완성하고, Georgetown 교수 오퍼를 받은 후 임용되기 전 다섯 달 동안 나머지 부분을 집필했다 (이 대목을 읽다가 저녁 먹은 것이 넘어가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career capital을 쌓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여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높아야 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저자의 경우에는 사실상 double-career을 쌓고 있는 것이니, 시간을 철두철미하게 쪼개쓸 수 밖에 없다. 이 책 이후 저자의 관심이 효율적인 생산성 늘리기에 맞추어진 것은 (이 책은 [딥 워크]와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전작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해 역시 좋은 책들과 함께 시작한다. Cal Newport의 높은 기준에 압도되지 말고, 지금 내 자리에서 해볼만한 “작은 프로젝트”들을 던지는 한 해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