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하나를 마치고 나니 새벽 세 시.
내일을 위해서는 어서 잠자리에 드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이대로 잠들기엔 뭔가 억울하다! 하는 보상 심보가 풍선맹키로 급격히 부풀어 올라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총총총 부엌으로 달려 가 냉장고 문을 열어젖혀버렸. 으나
눈에 보이는 거라곤
겨울부터 (있는 줄도 모르고) 쟁여놓은 캔맥주 한 캔과
숟가락을 앙 물고 있는 개구리 수박 반통...
잠시 절망했지만 그나마 이거라도 어디냐 싶어 몽땅 꺼내와 바닥에 쪼르르 진열했다. 그리곤
노트북 앞에 엎드려 애정 하는 시트콤을 클릭.
미국식 해학과 풍자와 적나라함과 유머러스함으로 점철된 프렌즈, 그 중에서도 시즌5는
보고 보고 또 보아도 언제나 좋다. 이제는 거의 대사까지 외울 지경인
장면들을 보며 낄낄거리던 중.
문득.
생뚱맞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어라 지금.. 행.. 행복하다? '
일이 들어오면 바빠지고 없으면 한가 해지는 직업이기에
휴가라는 이름을 붙여 작정하고 쉬는 것이 좀 어색해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다 보니 들썩들썩 지인들의 여름휴가 시즌은 나와는 좀 동떨어진. 뭐랄까 그들만의 행사처럼
느껴졌다랄까. 그래서인지 여름엔 곧 잘 심드렁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었더랬다.
그런데.
평일날 새벽.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애정 하는 시트콤을 보며
시원한 맥주를 홀짝이고 있자니, 이 또한 썩 괜찮은 여름휴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꼭 거창할 필요는 없지.
남들이 떠난다고 덩달아 떠날 필요도 없으며 그렇지 못했다고 서운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내 기준에 행복한 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보내면 그럼 된 거지. 그게 쉬는 거지. 휴가가 별거 간디.
내게 주어진 한 번뿐인 삶.
이왕이면 "나답게 사는 즐거움" 으로 꽉 채워 살다가 가고 싶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대찬 성격이 아니지만서도
그럼에도 틈틈이. 그렇게 살아볼 궁리를 줄기차게 하며 어떻게든 조금씩 실천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