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서류가방이었다. 빳빳하고 검은 서류가방이었다. 안에 든 것이 튀어나와 가방을 채 닫을 수 없었다. 노란 장미였다. 분명히 서류가방인데 빼꼼이 고개를 내민 것이 노란 장미인 것도 분명했다. 옆의 외국인에게 향기가 나느냐고 묻는 검은 양복의 중년남성의 얼굴엔 미묘한 즐거움이 묻어있었고, 외국인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노란 장미의 향이 어디선가 흘렀다.
도착한 역에서 내리려 입구에 섰을 때 외투를 벗은 아이가 두손을 번쩍 들고 방방 뛰면서 '드디어 지하세계 탈출이다!!!' 라고 외쳤고, 그와 똑닮은 그의 여동생이 뒤에서 비웃듯이 '아직이야.'라고 조용히 되뇌였다. 그 들의 뒤에는 하얀 얼굴에 눈 코 입이 단정히 가운데로 모인 한 할아버지가 안그래도 붙어있는 눈을 한번 더 찌푸려 모았고 누군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린 모두 뭍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드디어 지하세계 탈출이다.
아직이지만. 이제 곧.
노란 장미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