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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Dec 28. 2018

다기(茶器)는 너무 어려워?

[2. 다기에 관해] 다기의 기능 중심으로 살펴보기

자기 마음에 드는 차를 골랐다면 이제 그 차를 잘 우려내어 마셔야 한다. 어떻게? 다기를 사용해서. 그런데 전통 다기 세트를 떠올리며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세트를 다 갖춰야 완벽한 차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아니다. 전통 다기 세트의 구성품 하나하나는 모두 존재 이유가 있고, 갖춰 놓으면 쓸모가 있거나 편리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마치 좋은 펜을 가졌다고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 부엌의 흔한 그릇과 도구를 사용해도 맛있게 차를 우려낼 수 있다.


"2. 다기에 관해" 장에서는 차를 우려내고 마시는데 필요한 다기들의 기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필요 기능을 알면 쉽게 대체품을 찾아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종종 전용 다기 보다 더 편리한 경우가 있다. 차를 우려내고 마시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기능별로 정리해 보자.


첫째, 물을 끓이는 도구가 필요하다. 물에 다른 잡미가 배지 않게 하면서 필요한 온도로 가열해 주는 기능을 갖춰야 한다. 둘째, 가열한 물과 우려낸 차의 온도를 식혀주는 도구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도구인데, 입안에 화상을 입지 않고 차를 즐기기 위해서 필수적인 도구다. 셋째, 차를 우려내는 도구가 필요하다. 찻잎을 놓고 물을 부어서 차의 수용 성분을 우려내는 도구다. 찻잎을 걸러내는 기능도 있다. 차를 우려낸 다기에서 바로 차를 마실 수도 있는데, 여러 명이 함께 차를 마신다면 별도의 도구가 필요하다. 넷째, 차를 마시는 도구가 필요하다. 잔과 잔받침이다. 바로 손에 쥐는 물건이기 때문에 심미적 기능도 고려해야 한다. 다섯째, 기타 편의를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차를 계량한다거나, 물의 온도를 재고, 다기를 씻고, 우려낸 차를 보온하는 도구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있으면 좋고, 없어도 차를 우려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차를 우려내는 전용 테이블 또는 쟁반도 있으면 편리하다. 차를 우려내고 따르면서 찻물이 튀었을 때 닦아주는 다포도 편의 도구라 할 수 있겠다.


첫째부터 넷째 도구까지는 차를 우려내기 위한 필수 도구들인데, 이 도구가 반드시 별개일 필요는 없다. 극단적으로 주전자 하나만 있어도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식혀서, 차를 넣어 우리고, 직접 들고 마실 수도 있다. 주전자를 들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 좀 심하게 없어 보이는 것만 빼고는 문제가 없다. 그래도 이 얘기를 듣고 직접 시도하시는 분은 없기를.  


그리고 이후 포스트에서 다루겠지만, 차를 반드시 따뜻한 물에 우릴 필요도 없다. 상온의 물이나 차가운 물에 우리는 냉침법으로도 근사한 차를 만들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차를 우려내고 마시는 도구만 있어도 무방하다. 요지는 여기서 열거한 도구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차 도구를 모두 갖춰야만 차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그런 선입견은 버렸으면 한다. 완벽한 차 한잔을 추구하면서 도구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앞으로 물 끓이는 도구부터 시작하여 편의 도구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겠다.


광주광역시 북구 동림동에서 출토된 주전자형 토기 (보성 한국차박물관 소장, 저자 촬영)


보성 한국차박물관에서 만난 주전자형 토기! 광주 동림동에서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대규모 취락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술 또는 음료를 담아서 따르는 데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입구 부분에 17개의 작은 구멍을 뚫어서 걸러 마실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마도 차를 우리는 데에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맞다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다기 유물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차를 따를 때, 출구 부분이 둥그렇게 생겨서 물 끊김이 좋지는 않아 보인다. 출구의 반대편에는 손잡이를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 토기로 어떤 차를 만들어 마셨을까? 그 맛은 어땠을까? 보면 볼수록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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