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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Jan 02. 2019

물을 요리한다고?

[2. 다기에 관해] 물 끓이는 기구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물을 요리해야 한다. 그렇다 요리. 요리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조리 과정(주로 가열)을 거쳐 음식을 만듦"이다. 차를 만들기 위해 먼저 물을 가열하여 차를 우려내기에 적당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게 무슨 요리라고? 주전자에 물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거지.' 너무 간단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차 한잔을 만드는 데 있어 서 가장 기초가 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물을 끓이면 그 차이가 미미할지라도, 물 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물을 끓이면, 물속에 녹아 있던 기체가 빠져나가면서 맛이 변한다. 둘째, 물을 끓일 때 사용한 연료의 연기가 물에 배어서 냄새가 날 수 있다. 셋째, 물을 끓이는 용기의 성분이 녹거나, 냄새가 물에 배일 수 있다. 아무 주전자에나 물을 끓였다가 식힌 후 맛을 보면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끓인 물의 맛은 대체로 개운하지 않고 텁텁하다. 용존 기체가 빠져나가서 그런데, 이점은 물을 끓이면 반드시 일어나는 물리 현상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다만, 둘째와 셋째 이유에 따른 물맛의 변화는 물 끓이는 기구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고려해야만 한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물을 끓이는 기구들을 살펴본다.


먼저 물 끓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가열기구를 꼽아보자. 연료에 따라 살펴보자면, 가장 먼저 일반 가정에서 흔히 쓰는 가스레인지가 있고, 요즘에 보급이 늘어나고 있는 전기레인지가 있다. 전자레인지(microwave)도 물 끓이는 기구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캠핑을 가면 숯이나 땔나무를 사용하는 화로도 종종 물을 끓이기 위해 사용한다. 전통적인 차모임에서는 일부러 숯불을 피워 물을 끓이기도 한다. 그런데 기회가 있다면 캠핑장에서 화로에 물을 끓인 뒤 그것을 집에 가져와서 맛을 보시라. 은은한 숯 또는 땔나무의 훈연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차 가운데 정산소종은 훈제 과정을 거쳐서 스모크향이 난다. 일부러 정산소종과 같은 스모크향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숯 또는 땔나무 사용은 찻물을 끓이는 연료로는 부적절하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전통 차모임의 경우 분위기를 잡기 위한 목적으로 화로를 사용할 수 있겠다. 인터넷 상에서 일본의 차모임에서 방 한가운데 화로를 놓고 물을 끓이는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스레인지의 경우, 도시가스와 LPG에는 누출을 쉽게 감지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악취가 나는 물질을 첨가하는데, 가스레인지에서 끓인 물에는 이 냄새가 난다고 하는 아주 민감한 분들도 봤었다. 솔직히 저자는 거의 알 수가 없다. 고급 연료인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 연소가 없기 때문에 연료로 인한 냄새는 없다. 다만, 물속에 코일을 노출하여 가열하는 방식의 전기포트에서는 비릿한 전기 냄새(?)가 난다. 물속으로 미미하지만 전기가 흐르면서 전기분해가 일어나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여 물을 끓일 수 있지만, 과열로 인한 폭발을 주의해야 한다. 아주 매끈한 내열 용기에 물을 끓이면, 물속의 기체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과열되다가 용기를 꺼낼 때 갑작스럽게 반응하며 폭발한다(폭발 실험 비디오). 이 뿐만 아니라 어떤 기구를 사용하든 물을 끓일 때는 항상 화상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물은 주전자에 끓인다. 소재에 따라 주전자를 분류할 수 있다. 무쇠, 스테인리스, 내열 유리, 돌, 옹기, 플라스틱(전기 포트) 등. 다양한 소재의 제품이 있는데 주전자를 선택할 때의 기준은 역시 물맛에 미치는 영향이다. 무쇠 주전자를 사용하면 물에서 쇠 냄새가 난다. 쇠 성분 섭취가 빈혈에 도움이 된다면서 무쇠 주전자를 고집하는 분들이 있는데 솔직히 저자는 물맛에 영향으로 주고, 무겁기도 한 무쇠 주전자의 유용성을 알 수가 없다. 다음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주전자. 스테인리스의 종류와 품질에 따라 스테인리스 주전자에서도 쇠 냄새가 날 수 있다. 이것은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찬물을 한 동안 담가 두었다가 맛과 향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내열 유리, 돌, 옹기 등 세라믹 계열 소재에서는 자연적으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다만 옹기의 경우,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나 있어서 그곳에 스며든 액체가 남아 있을 경우 재가열 할 때 그것이 다시 흘러나와 맛과 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뚝배기를 생각하면 되겠다. 내열 유리 주전자는 물을 부을 때 외부에서 양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중에는 주전자 표면에 계량 눈금을 그려 놓은 것도 있다.


플라스틱 수조에 물을 담아 데우는 방식의 전기포트에서는 플라스틱 냄새가 배어날 수 있다. 사용 설명서에 따르면 반복 사용으로 냄새가 사라진다고는 하는데, 저자는 플라스틱 전기포트로 끓인 물에서는 미세하게 플라스틱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전기포트의 수조가 스테인리스라 하더라도, 뚜껑 부분에 사용하는 플라스틱과 실리콘으로부터 냄새가 밸 수도 있다. 뚜껑을 열어 놓고 가열하면 냄새가 배이는 것을 피할 수 있지만 안전상 권하지는 않는다. 전기포트는 상대적으로 사용 중 화재의 위험이 적고, 물의 가열 온도를 설정할 수 있고 보온을 할 수 있는 등 장점이 있다. 수조가 내열 유리로 되어 있거나, 스테인리스 또는 플라스틱 수조에도 물 용량을 가늠할 수 있는 창을 뚫어 놓은 제품들은 앞서 내열 유리 주전자와 마찬가지로 물의 양을 간편하게 계량할 수 있다. 이 점들도 기구 선택에 고려할 수 있겠다. 


어떤 가열기구와 주전자 조합이 가장 이상적일까? 가열기구의 경우 대부분의 집에 이미 설치되어 있는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주전자를 선택해야 할 텐데, 인덕션 전기레인지의 경우 금속 성분의 주전자만 사용할 수 있어서 스테인리스 주전자가 최선의 조합이다. 반면 가열형 전기레인지나 가스레인지는 내열 유리나 스테인리스 소재의 주전자를 사용할 수 있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내열유리 소재의 주전자를 선호한다. 쇠 냄새의 발생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맘 편하기 때문이다. 전기 포트의 경우 플라스틱 수조 보다는 스테인리스나 내열유리 소재 수조가 좋겠다. 또한 코일 노출형 보다는 바닥을 가열형이 전기 냄새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지 맹물을 직접 가열해보고 연료와 소재로부터 안 좋은 냄새가 배이는 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이상적인 물 끓이기 기구 선택하는 방법이다.

경주 동궁와 월지 유적에서 출토된 풍로의 모형(보성 한국차박물관 소장품, 저자 촬영)

연통과 불구멍 2개를 갖춘 화로이다.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유적은 무덤에서 나온 매장 유물과 달리 직접 일상에서 사용하던 유물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이 풍로의 안쪽에는 불에 그을린 흔적도 남아 있다. 차를 우리기 위한 물을 끓일 때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크기도 작아서 아마도 들놀이를 나갈 때 들고 가서 차모임을 갖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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