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차 한잔을 위한 레서피
아직 차밭에 봄날은 요원하다. 작년에는 요맘때 남쪽 지방에 폭설이 내려 차밭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었다. 겨울바람이 차가워도 차나무 속에서는 새순을 틔워 올리기 위한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5월 차 축제로의 여행도 미리 준비해 보심이 어떨는지.
차는 농산물이다. 자연의 주기를 따르는 농산물은 제철이 있다. 대부분 농산물이 제철에 최고의 맛과 향을 뽐낸다. 우리나라에서 차의 제철은 햇차가 나오기 시작하는 4월부터 여름의 문턱인 6월까지라고 할 수 있겠다. 흑차나 백차 같은 오랜 숙성이 필요한 차를 제외하고, 차가 갓 만들어진 이때가 최고의 차맛을 볼 수 있는 시기이다. 그리고 마침 이때는 축제의 계절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차 생산지, 전라남도 보성과 경상남도 하동에서는 매년 5월경에 차 축제가 열린다. 농산물인 차의 특성상 아직 2019년도의 축제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차를 수확하는 시점을 축제 일자로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작황을 보아 가면서 봄에 날짜를 결정해서 홍보한다. 축제 일정에 관한 정보는 보성과 하동 군청이 관리하는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2018년 차 축제 홍보 웹사이트:
보성 다향대축제
하동 야생차문화축제
자기 마음에 드는 차를 시음해 보고 선택하기에 고르기 좋은 곳으로 차 축제를 꼽았었다. 차 축제에는 차 생사자들이 참여하여 부스를 차린다. 부스마다 농가에서 직접 생산한 몇 가지 햇차를 가져다 놓고 방문객이 원하는 차를 우려서 제공한다. 심지어 무료이다. 올해 작황도 물어보고 햇차의 맛과 특색도 얘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부스가 못해도 30여 군데는 된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전체를 맛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차밭 방문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아침 일찍 가면 찻잎을 직접 딸 수도 있다. 보성에서는 자기가 딴 찻잎으로 자기가 마실 녹차를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하동에서도 차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음용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차 덖는 체험은 시간 여유가 된다면 꼭 한번 해보시라고 강추한다. 생 찻잎을 덖을 때 올라오는 향기가 가히 환상적이다. 체험을 돕는 농민들도 '이 맛에 차를 만든다'고 할 정도이다. 장담컨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도와 만두를 처음 빚었던 경험처럼, 차를 한 번 덖어보고 나면 차가 두 배는 더 맛있어질 것이다.
차와 관련된 모든 것의 전시를 찾을 수 있다. 각종 다기와 다구 전시는 당연하고 찻잔, 찻사발 만들기 체험이라든가, 해외 차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도 빠지지 않는다. 지갑을 활짝 열고 필요한 물건을 하나 둘 사모으다 보면 저녁쯤에 영수증의 두께에 놀랄지도 모른다. 차 축제장에서 지름신은 더 강하다.
한참 축제장을 돌아다니다 한숨 쉬어가고 싶으면 차 박물관을 방문한다. 차에 대한 정보도 얻고, 다양한 다기 컬렉션도 감상할 수 있다. 난장에서 얻어진 여러 정보들이 차분히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보성 박물관에서는 전통 다도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전문 다례사가 차려주는 차를 여유 있게 마시는 것도 삼삼한 경험이다.
그 외에 우리나라의 지역 축제가 대부분 비슷비슷하듯이. 초청 가수의 공연도 있고, 뽕짝 춤판도 있고, 기름 냄새 가득한 먹거리장도 있다. 차 축제장에서는 차를 넣은 메뉴를 개발해서 판매하는데, 솔직히 차를 음식에 넣으면 그 특색을 느끼기 어렵다. 그보다는 차를 넣은 디저트 종류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차 축제에 차와 다구를 구하러 가는 분을 염두에 둔 팁이다. 이 팁은 서울 코엑스나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차 박람회를 방문할 때도 응용할 수 있겠다.
(1) 미리 방문 희망 부스를 선정
부스가 많다. 며칠 동안 방문할 예정이라면 몰라도 하루 만에는 모든 부스를 방문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카페인 과다 섭취의 위험이 있다. 미리 웹사이트에서 참가 다원 리스트를 확인하고, 인터넷 서치를 통해 언론에 소개되었던 다원이나 과거 대회에서 수상한 다원 몇 군데를 선정해 놓고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축제장 품평회에서 수상한 다원들도 방문해 봐야 한다. 서너 군데를 이렇게 선정해서 먼저 방문하고 나머지는 돌아다니면서 관심 가는 곳을 방문하는 게 좋겠다.
(2) 개인용 시음 잔 준비
부스마다 다기 세트를 갖춰놓고 정성스럽게 차를 서빙한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차를 구하러 방문을 했다면 가급적 많은 부스를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시음을 해야 한다. 예를 갖춰서 차를 마시다 보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 못해도 부스마다 20~30분은 걸린다. 그래서 작은 개인용 시음 잔을 가지고 가서 관심 가는 차만 조금 따라 달라하여 맛을 보고 이동하는 것을 권한다. 주인장에 따라 싫어하는 분도 있는데, 차를 구하러 시음을 하러 다닌다 하면 대부분 양해해 줄 것이다. 정말 맘에 드는 차를 만났다면 그때 주인장과 마주 앉아서 한 잔 하는 것도 좋겠다.
(3) 시음 중간에 입을 헹궈줄 물 준비
축제장이 넓어서 물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부스마다 차를 우리기 위해 준비한 물이 있기는 하지만, 매번 그것을 달라 하기도 번거롭고 부스마다 물맛이 달라서 시음에 방해를 줄 수도 있다. 개인 물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시음 중간에 물로 입을 헹궈주면 편리하고 시음의 조건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차 축제를 방문하면서 느꼈던 점들이다. 축제가 좀 더 개선되고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감히 적어 본다.
차와 차 생산자들이 확실한 주인공이 될 필요가 있다. '지역 축제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를 한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행사를 만들어 내다 보니 차별성이 부각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저녁 공연의 초대가수가 누구냐에 따라 축제의 흥행이 결정되기도 한다. 차 축제에서도 앞의 "차" 보다는 "축제"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흥겹게 먹고 마시는 축제.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축제를 개최하고 주인공인 차 생산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앞의 "차"가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차 때문에 먼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축제는 어디서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상품이기 전에 음료로서의 차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차를 마신다는 것은 기호음료를 마신다는 의미 보다는 문화로서 즐긴다는 의미가 더 큰 듯하다. 차 축제에서도 차 자체 보다는 다도와 관련된 부대 행사가 더 많다. 그런데 이런 문화상품의 이미지, 특히 전통적인 이미지가 젊은 세대가 차에 관심을 갖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힘들게 차를 생산한 농민들의 성취를 축하하는 기회로서 올해의 차 품평회가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산자들도 방문객들도 관심이 적은 점이 실망스럽다. 품평회를 통해 올해 생산한 차의 특성도 알릴 수 있고, 생산자들이 더 좋은 차를 생산하게끔 경쟁을 촉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품평회 결과가 나와도 시상식을 하면 그것으로 끝. 일반 방문객들은 어떤 생산자가 최고의 차를 생산했는지를 쉽게 알 수 없다. 수상한 생산자들의 부스에 큰 차나무 꽃 모형을 달아 주어서 방문객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생산자들이 부스를 꾸밀 때 자신들의 찻잎을 자랑스럽게 전시하면 좋겠다. 대개 부스에 방문하면 차를 우려서 대접하기에 바쁘다. 그보다는 차를 구하러 방문한 사람들이 여유있게 마른 찻잎을 보고 시향도 하게 두면 어떨까? 그러다가 관심이 생기면 그때 차를 시음해도 충분하다. 솔직히 부스를 방문할 때마다 정성스럽게 차를 대접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자신의 생산품 중 대표 차만 우려 놓고 항상 조금씩 따라 줄 수 있게 준비 해 놓으면 어떨까? 방문객들이 여러 부스를 다니면 차를 시향하고 시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