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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Jan 10. 2019

내 손 안의 예술품

[2. 다기에 관해] 차 마시는 기구

차를 우려냈으면 폼나게 마셔야 한다. 어떤 그릇이라도 액체를 담을 수만 있으면 찻잔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차를 마시다 보면 내 손과, 입술과 직접 닿는 찻잔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점점 더 예쁘고 내 맘에 쏙 드는 잔을 찾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찻잔은 심미적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내 눈에 이뻐야 한다. 그런데 미적 취향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잔이 좋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다. 


차를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저자는 맘에 쏙 드는 찻잔을 찾아서 헤매어 왔다. 박물관에서도 주로 찻잔을 유심히 보고, 그릇 코너에서도 이것저것 잔을 쥐어보며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발품을 팔아서 이 잔, 저 잔을 살펴보고, 잡아 보면서 고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맘에 드는 잔이 있다면 질러야 한다. 다기들 가운데서 돈을 좀 들여야 하는 것이 잔이다. 내가 가장 가까이하는, 손 안의 예술품인데 투자를 좀 해야 하지 않겠나.


심미적 기준을 일단 제쳐 놓고 어떤 게 이상적인 찻잔일까? 먼저 잔의 크기와 두께. 이것은 자신의 손과 입술 사이의 벌어진 정도에 맞는 것이 좋지 않을까? 손을 자연스럽게 움켜쥐었을 때의 모양에 쏙 들어오는 정도의 크기가 쥐고 있기에 편하고 부담이 없어서 좋다. 말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다완의 경우는 두 손으로 쥐고 마시는데 역시 자신의 두 손을 모았을 때의  크기에 맞는 것이 좋겠다. 손잡이가 달린 찻잔이라면 손잡이의 두께와 크기가 자신의 손으로 잡아 들기에 편한 것이 좋다. 


잔의 두께는 입술이 자연스럽게 벌어진 정도보다 두꺼운 것은 피하는 게 좋겠다.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들이켤 때, 입을 의식적으로 크게 벌리게 되면 방해가 된다. 오히려 얇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데, 찻물의 온도가 바로바로 손에 전해질 수 있고  잔의 무게가 가벼워 지기 때문이다.


찻잔의 소재로 으뜸은 역시 세라믹 소재인 도자기 또는 유리이다. 금속이나 플라스틱 또는 나무 소재 잔은 고유의 냄새가 날 수 있다. 입술에 닿는 느낌을 생각해도 매끈한 세라믹 소재가 좋다. 백자나 유리의 경우는 차의 색깔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청자나 다른 색깔의 도자기는 찻물 색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약점이다. 대신에 백자 또는 유리 소재의 숙우나 차해를 사용한다면 찻물 색을 확인하며 차를 마실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백자 잔을 선호한다.


무려 백제시대의 컵! 처음 이 잔을 보고 그 모던함(?)에 크게 놀랐었다. 무엇을 마셨을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저자 촬영)


잔받침도 무시하지 말자!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잔과 세트인 잔받침이다. 잔받침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받침 없이 차를 마시고는 한다. 그런데 차를 계속 마시다 보면 받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잔받침의 기능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방음의 기능이다. 잔을 내려놓을 때 소음을 줄여 준다. 조용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다 보면 이 소리가 생각보다 거슬린다. 둘째, 수분 흡수의 기능이다. 차를 마시다 보면 어떻게든 흘리기 마련이다. 특히 찻잔에 차를 따를 때 넘칠 수도 있고 튀길 수도 있다. 이때 잔받침이 물기를 흡수해 주면 좀 더 깔끔하게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


도자기 다기 세트를 사면 찻잔과 함께 도자기로 만든 잔받침도 함께 들어 있다. 그런데 이건 몹쓸 물건이다. 방음과 수분 흡수의 기능을 둘 다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잔과 세트로 함께 맞춰서 제작하여 주는데, 이 경우에는 도자기 잔받침에 천이나 종이 소재로 된 잔받침을 깔아 주고 사용하는 게 좋다.


정말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잔받침들이 많다. 돌, 금속, 유리, 도자기, 플라스틱, 종이, 섬유, 나무, 코르크 등등. 이 가운데 잔받침에 필요한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할 수 없는 딱딱한 소재들은 탈락이다. 도대체 왜 이런 소재로 잔받침을 만드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돌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잔받침은 올려놓다가 잔을 깨지나 않을까 불안할 정도다. 종이, 섬유, 나무, 코르크 정도만 잔받침의 소재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여기에 추가로 내구성도 따져봐야 한다. 종이 잔받침의 내구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 찻물로 인한 오염에 크게 신경 쓰지만 않는다면 말려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요즘에는 펠트 소재의 잔받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방음과 흡습성이 좋고 오염의 제거도 가능하다. 전통 찻집에서는 나무 잔받침을 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적으로 방음과 흡습성은 떨어진다. 코르크 소재도 흡습성이 떨어진다. 저자가 발견한 최고의 잔받침은 동남아 여행 중에 구입한 등나무를 짜서 만든 컵받침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큰 기대 없이 구입했는데 차를 마실 때 매우 유용하다. 등나무를 얽어 놓은 형태라서 방음과 흡습성이 좋다. 차를 흘려도 나무 틈새로 스며 버린다. 이와 유사하게 돗자리처럼 왕골로 짠 잔받침도 유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잔받침(좌, 왼쪽부터 등나무, 천, 코르크 소재), 도자기 잔받침 위헤 천 소재 잔받침을 올려서 사용하는 예(우)(저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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