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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Jan 05. 2019

찻잎과 물의 만남과 이별

[2. 다기에 관해] 차 우리는 기구

마른 찻잎에 처음 물을 부을 때, "츠츠츠"하며 찻잎 구르는 소리가 좋다. 정성스럽게 고른 차와 덥힌 물이 만나는 설레이는 순간. 그리고 곧 찻잎과 물이 이별하면서 차가 완성된다. 이런 만남과 이별의 장소를 어디로 하는 것이 좋을까? 이번에는 차를 우리는 기구에 대해 살펴본다.


질문, "차를 어디에 우려내야 하나요?" 답, "아무 데나." 너무 성의 없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로 물만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면 어디에도 차를 우려낼 수 있다. 찻잎 속의 수용 성분을 물에 우려낼 수만 있다면, 어느 용기에서도 차가 만들어진다. 찻잎과 물의 만남은 어떤 형태의 그릇에서라도 가능하다. 심지어는 생수병에도 차를 넣어 냉침하여 마신다. 티업(Tea-Up)이라고, 생수병 뚜껑에 티백을 달아 놓은 것과 같은 아이디어 상품도 있다. 생수병 뚜껑을 티업으로 바꿔 끼우고 내버려 두면 차가 완성이다. 마치 물을 마시듯 생수병 속의 차를 마실 수 있다.

티업. 거름망이 있는 길쭉한 부분에 차를 넣은 후 생수병에 넣어 우린다(저자 촬영)


차를 우리는 전용 다기가 있는데, 이것의 핵심 기능은 찻잎을 걸러주는 것이다. 찻잎과 이제는 차가 된 물을 깔끔하게 이별시켜 주는 일이다. 사실 찻잎을 먹어도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차를 마시며 찻잎을 우적우적 씹는 것은 그다지 우아해 보이지 않을뿐더러 맛도 없다. 그냥 풀 맛이다. 그리고 찻잎을 걸러서 남겨 놓아야지 몇 번 더 우려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찻잎은 다기에 양보하자. 여기서는 찻잎을 걸러주는 방식과 소재, 형태에 따라 차 우리는 기구를 분류해 보겠다.


찻잎을 걸러주는 방식: 거름망 vs. 비거름망


찻잎을 걸러주는 방식은 거름망과 비거름망으로 나눌 수 있다. 거름망 방식은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을 뚫어 놓은 망을 사용하여 찻잎을 걸러내는 방식으로 사실 대부분의 다기들이 이 방식을 사용한다. 스테인리스 소재의 거름망을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다기 자체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차를 거르게끔 한 제품도 거름망 방식이다. 반면에 비거름망 방식은 찻잎을 거르기 위해 차를 따를 때마다 찻잔 뚜껑으로 작은 틈을 만들어서 찻잎과 물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거름망 방식과 비교하여 원시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각각 장단점이 있다.


거름망 방식의 큰 장점은 사용의 편리함이다. 찻잎에 물을 붓고, 따라 주기만 하면 완성이다. 거름망이 알아서 구멍의 지름보다 큰 찻잎을 걸러준다. 단점은 거름망의 세척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비거름망 방식의 장단점은 정확히 거름망 방식과 정반대이다. 단점은 작은 틈을 만들어 찻잎을 거르는 기술을 숙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손가락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장점은 다기의 세척이 편리하다.


개완(蓋碗): 비거름망 방식 다기


먼저 비거름망 방식 다기부터 살펴보자. 비거름망 방식의 차 우리는 다기의 원조는 중국에서 고안된 개완이다. 개완이 언제 최초로 발명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문헌에 따라 당나라부터 명나라까지 다양한 설이 있다. 다만 잎차를 주로 마시기 시작한 명나라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후로 개완을 응용하고 개량한 다기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왔다. 우리나라에는 "1인용 다기" 또는 "여행용 다기"라고 이름 붙여진 개완 스타일 다기들이 유통되고 있다. 차가 흘러나오는 부리를 만들고 홈을 파서 찻잎 거르는 것을 원조 개완보다 편리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찻잎을 거르는 과정이 거름망 방식보다 조금 어려워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척이 월등히 편리해서 차를 마실 때마다 상쾌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찻잎을 거르는 과정도 몇 번만 연습하면 쉽게 숙련할 수 있다.


개완(좌), 1인용 다기(우, 남촌도예). 찻잎을 거르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뚜껑 틈을 약간 벌려 놓았다. 1인용 다기에는 물 흐름을 좋게 하기 위해 홈이 파져 있다(저자 촬영)


거름망 방식 다기는 형태에 따라 다관, 찻잔, 멀티 티 서버로 나눠 볼 수 있다. 다관은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이다. 거름망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방식이 있고, 다관 자체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찻잎을 걸러주는 방식이 있다. 거름망을 탈착 할 수 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세척이 편리하다. 자체에 거름망이 있는 다관은 특히 부리 안쪽 부분의 세척이 까다롭다. 특별히 고안된 솔을 사용해야 한다.


다관: 차 우리는 주전자


다관의 소재로는 무쇠, 유리, 도자기, 옹기 등을 사용한다. 무쇠 다관은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앞서 물 끓이는 기구 편에서 언급했지만, 무겁기도 하고 쇠 냄새가 나서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다음으로 유리 다관은 속의 찻잎이 우러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꽃차라고 부르는 공예차를 넣고 물을 부으면 물속에서 활짝 피어나는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저자는 꽃차나 찻잎이 특별히 아름다운 차를 우릴 때에는 유리 다관을 사용한다.


우리나라 전통 다관의 소재는 대부분 도자기이다. 도자기는 유약 처리를 해서 위생적이고, 무엇보다 백자, 청자와 같이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다관의 소재로서 도자기의 단점은 특별히 찾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옹기 다관의 대표 격은 중국의 자사호이다(타이틀 배경 사진). 옹기 소재는 유약 처리를 하지 않아서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많이 있는데, 이것이 옹기 다관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먼저 단점은 구멍에 우려내는 차의 성분이 성분이 침착하여, 여러 종류의 차를 우려낸다면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옹기 다관에는 한 종류의 차만 우려낸다. 역으로 장점은 한 종류의 차만 지속적으로 우려내면서 차의 향과 맛이 더 강화될 수 있다고 한다.


찻잔: 거름망 + 찻잔


아무 잔에 거름망을 넣어 사용하면 차 우리는 도구가 된다. 차를 우려낸 후 거름망을 빼버리고 차를 바로 마실 수 있어 간편하다.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거름망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잔에 들어맞게끔 세트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길쭉한 원통 모양, 열고 닫을 수 있는 작은 조개 형태의 거름망도 있다. 시중에 엄청나게 다양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거름망들이 많이 나와 있다. 찻잔에 사용하는 거름망을 선택할 때는, 우려내려는 찻잎이 쉽게 퍼질 수 있도록 넉넉한 것이 좋다. 작은 조개 거름망에 찻잎을 욱여넣고 차가 충분히 우러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용의 편리성 때문에 거름망+찻잔 조합을 흔히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이 차를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려낸 차를 식히지 않고 바로 마시는 것이 좋지 않다. 한 잔씩 냉침을 하여 먹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차의 농도를 조절할 수가 없다. 차해(공도배)를 사용하면 차의 맛과 향을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차모임을 가질 때, 참석자들이 모두 개인 잔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는 모양이 좋지 않다. 술처럼 차도 서로 따라 주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잔의 소재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차를 마시는 기구)에서 더 다루겠다.


멀티 티 서버: 신발명품!


멀티 티 서버는 차 또는 커피를 우려내는 전용 도구이다. 언뜻 보면 프렌치 프레스와 유사하게 생겼다. 2층으로 되어 있어서 위층에서 차와 물을 넣어 우려내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버튼을 누르면 차가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고인다. 아래층의 차 용기를 빼서 잔에 서빙하면 끝이다. 대만에서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이 제품을 접했을 때 원나라 개완을 있는, 차세계의 위대한 혁신이라 생각했었다. 차세계에서는 전통을 중시해서 그런지 혁신이 참 없다. 언뜻 생각하기에 대만에서 찻잎을 돌돌 말아 쌀알처럼 만든 것, 중국에서 인공 발효법을 이용해 숙차를 생산한 정도가 차세계의 혁신으로 떠오른다. 어쨌거나, 참신한 아이디어로 다가왔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복잡해 보여서 부담스럽다. 그리고 세척도 걱정이다. 물로 한 번 헹궈 놓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일일이 분해해서 세척하는 것은 큰 일이다. 차를, 간편하지만 제대로 우려내서 즐기기를 원한다면 사용해 보시길.


멀티 티 서버(제품명 Piao Gl865 Infusion Tea and Coffee Pot, 사진 출처: Amaz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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