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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Dec 23. 2019

티백에 대한 오해

[3. 차 만들기] 티백으로 마실만한 차를 우려내는 방법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차를 처음 접하는 경로가 티백일 것이다. 컵에 뜨거운 물만 부어서 우려 마실 수 있는 간편함 때문에, 처음에는 '이게 차가 된대!'라는 신기함으로 차를 우려내 마셔 보고는 쓰고 떫은맛에 기겁하며 '차란 이렇게 쓰고 맛이 없구나'라는 선입견을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고, 지금도 계속 그러고 있다(작가가 "완벽한 차 한잔을 위한 레서피"를 연재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이후 우연한 기회에 제대로 우려낸 차를 마셔 보고는 '어 떫지 않은, 맛있는 차도 있구나, 내가 마셨던 티백은 저질 찻잎을 넣어서 그랬나 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티백은 저렴하고 질 나쁜 찻 가루를 집어넣어서 만든,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값싼 대용품"이란 선입견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티백은 죄가 없다. 사실 티백에 들어가는 차도 매우 다양하다. 샘플링을 위해서 그냥 티백을 잘라 꺼내 마셔도 될 정도의 고급 잎차를 넣어 만든 티백도 있고, 잎차를 만드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가루차를 모아서 만드는 티백도 있다. 가루차라 하더라도 원래의 잎차 품질이 좋다면 하급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국에서 선물 받은 서호용정 녹차 티백. 티백에서 꺼내서 마셔도 될 정도 상태의 잎차가 들어 있다. 이런 티백은 보통의 잎차를 마시듯이 우려 마셔도 상관없다.(저자 촬영)


여기서 잠깐 차의 등급에 대해서 알아보자. 홍차의 등급이다. 보통 등급은 영어 약자로 표시하는데, 잎차(Orange Pekoe, OP)인지, 가루차(Broken, B 또는 Fannings, F 또는 Dust, D)인지를 우선 구분하고 추가로 찻잎의 크기, 상태, 수확 시기를 표시하는 약자를 붙인다. 차의 등급은 지역과 제조사마다 자체 기준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약자가 많이 붙을수록 고급이라 보면 된다. 등급의 예를 살펴보자. T.G.F.O.P는 Tippy Golden Flowery Orange Pekoe의 약자인데, 인도 아쌈이나 다즐링 지방에서 생산한 최상등급 홍차로 차나무 제일 끝에서 나오는 어린 새싹만으로 제조한 홍차란 의미이다. 이와 유사하게 T.G.F.O.F는 Tippy Golden Flowery Orange Fannings의 약자로 앞의 T.G.F.O.P와 같은 최상등급 찻잎이지만 가루(fannings) 상태의 차를 의미한다. 


티백을 구입할 때 포장 겉면을 잘 찾아보면 이 등급을 확인할 수 있다. 티백이라고 모두 저렴한 것은 아니다 안에 들어가는 차의 등급에 따라 무척 비싼 티백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렌지 페코 이상의 상급품 티백을 팔고 있다. 그런데 가격이 상대적으로 매우 비싸서 이걸 누가 사 먹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한 마트에서 발견한 "Imperial F.O.P" 등급의 티백 상품. 티백이라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저자 촬영)

천덕꾸러기 같은 티백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특히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저렴한 녹차나 홍차 티백 말이다. 원래 티백은 영국식 밀크티를 간편하게 만들어 마시기 위해서 발명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가루 함량이 많아 차가 진하게 우러나도 별 문제가 안된다. 어차피 5분 이상 진하게 우려낸 뒤 우유와 설탕을 듬뿍 쳐서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레이트로 순수한 차를 우려내어 마실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티백 조리에 대한 작가의 제1 어드바이스는 가급적 낮은 온도에서 짧게 우려 마시라는 것이다. 절대,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확 부어버리는 것은 피하자. 언제인가부터 흔하게 볼 수 있는 녹차 브랜드의 티백에 이런 안내문이 붙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과 찬물을 2:1로 섞은 후 차를 우리세요." 티백 속의 찻잎이 가루 상태이기 때문에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우려내면 찻잎 속의 여러 성분이 엄청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쓴맛과 떫은맛을 내는 카페인, 폴리페놀 등의 성분이 다량 우러난다. 따라서 가루차로 만든 티백을 우려낼 때, 물의 온도는 무조건 낮아야 한다. 쓰고 떫게 우려 졌다면 설탕이나 우유를 첨가해 마시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설탕으로 쓴맛을 가린다고 하더라도, 원래 차가 맛이 없으면 설탕을 때려 부어도 맛이 덜하다. 


탕비실에서 처음 보는 녹차 티백을 발견했다면, 우선 티백 속 내용물의 향도 맡아보고, 만져도 보면서 유심히 관찰해 보자. 잎과 가루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차 외에 다른 가향 성분 없는지 확인해 본다. 티백에 가루 성분이 대부분이라면 작가는 냉침부터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냥 찬물 또는 상온의 물에 티백을 넣고 10분 이상 우려 보는 것이다. 가루 성분이 많다면, 짧은 시간에도 그럴듯한 차가 만들어질 것이다. 냉침으로 몇 번 마셔 보면서 티백의 특성을 파악했다면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온도와 우리는 시간을 조절해본다. 예를 들어, 차의 떫은맛이 강하지 않다면 온도를 70도 정도로 올리고 우려내는 시간도 늘리는 식이다.


작가는 여름철에 시원한 차가 마시고 싶을 때는 녹차 티백을 사용하여 냉녹차를 만들어 마신다. 따뜻하게 마시고 싶다면, 앞서 티백 포장에 나와 있는 안내문처럼 정수기에서 찬물과 따뜻한 물을 섞어서 온도를 낮춰 우려내 마셔 보시라. 차의 성분이 어느 정도 우러나고 나면 티백은 반드시 빼버려야 한다. 집에서라면 끓인 물을 식히거나 적정 온도로 데운 물을 사용하면 된다. 




<티백으로 차를 우려내는 방법>

* 집이 아닌 외부에서 간편하게 차를 마시는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준비물: 티백, 컵(가급적 머그컵을 사용하길 권한다. 종이컵에는 종이 냄새가 난다. 머그가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정수기(찬물과 따뜻한 물이 모두 나오는), 타이머 또는 스마트폰


순서

1.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과 찬물을 각각 적당량 컵에 받아서 섞는다: 적정 온도를 만들기 위함이다. 정수기 온수의 평균 온도는 70~80도 냉수는 10도 이하이다. 가루가 대부분인 차라면 60도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

2. 컵에 티백을 천천히 넣는다: 이때 티백 속에 공기 주머니가 생겨서 티백이 물에 잠기지 않고 뜨는 것에 주의한다.

3. 타이머 또는 스마트폰에 원하는 시간을 설정하고 기다린다: 취향에 따라 최소 20초에서 최장 2분까지를 권장한다.

4. 티백을 아래 위로 살짝 흔들어서 찻물을 섞어 주고 살짝 맛을 본다. 이때 스푼 등을 사용하여 티백을 짜는 것을 삼가자. 쓰거나 떫어질 수 있다.

5. 차가 원하는 농도로 우러났으면 티백을 빼버린다: 차를 더 우려 마시려 한다면, 빼낸 티백을 다른 종이컵이나 접시에 챙겨 놓는다.

6. 차를 적당 온도로 식힌 후에 마신다: 물식힘 그릇을 사용한다면 옮겨서 식혀 준다. 물식힘 그릇이 없다면 컵 두 개를 놓고 양쪽으로 옮겨 담으면서 식힐 수 있다. 

7. 더 우려내서 마시고 싶다면 1~6을 반복하는데, 회수를 늘려갈 때마다 우려내는 시간도 몇십 초씩 늘려준다. 




가능하다면 티백으로 차를 우려 마실 때도 물 식힘 그릇(숙우, 차해 또는 공도배)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그런데 대부분 사무실 환경에서 다기를 갖춰 놓고 마시는 것이 쉽지 않다. 이때는 종이컵을 두 개 사용하여 차를 옮겨 담아가며 차를 식힐 수 있다. 앞선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마시기 전에 찻물을 식혀서 적정 온도를 맞추는 것이 구강 내 화상을 예방하고 맛을 제대로 음미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티백을 우려내는 온도와 시간만 적정하게 맞추고, 찻물을 식혀서 마신다면 탕비실의 흔한 티백도 훌륭한 한 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천덕꾸러기 티백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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