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백번을 양보해도 한국 사람의 쏘울 푸드는 국밥이다. 생각만 해도 영혼까지 촉촉해지는 쏘울 푸드. 오랜 객지 생활을 겪어본 사람은 쉽게 동의하리라,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서 마주한 얼큰한 국물 한 그릇의 위안을! 설렁탕, 곰탕, 순대국밥, 육개장 등등, 이름은 달라도 이런 뜨끈한 국물과 밥을 함께 먹으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의 허기짐을 달랜다.
사회생활을 좀 했다면 누구든 허름하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단골 국밥집 하나 정도는 있으리라. 그 국밥집 아주머니가 얼굴까지 기억해 준다면 꽤 괜찮게 살아지고 있는 인생이다. 그리고 그런 단골 국밥집에서 홀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싸질러본 찌질한 추억이 없다면 아직 덜 성숙한 거다.
여러 국밥 종류 가운데 몽원다인의 선택은 순대국밥이다. 태어날 때부터 순대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어느 집을 가나 소박한 순대국밥집 특유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옆동네로 이전을 해서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단골 순대국밥집을 간만에 방문했다. 사실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치밀어 올라서 이를 달래러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어제 다녀갔던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주인장 부부. 언제나처럼 순대국밥을 시키고 오랜만에 방문한 기념으로 돼지고기 수육까지 시켰다. 아마도 다들 자기 나름의 국밥 레서피가 있을 진대, 몽원다인의 순대국밥 레서피는 석박지 2~3쪽, 양파 5~6쪽, 마늘 4~5쪽, 들깨가루 많이, 다대기 한 스푼이다. 이렇게 국밥에 넣고 휘휘 저어 먹으니 그 맛이 변함없음에 감사한 마음이 다 들 지경이었다.
수육을 안주 삼아 홀로 소주를 마시니 그 느낌이 남다르다. 국밥이 맛있는 집은 뭘 시켜도 다 맛이 있다. 돼지비계가 잘 붙어서 야들야들한 수육이 있으니 다른 어떤 안주도 부럽지 않았다. 술친구 없이 혼자 마셔도 주인장 부부가 슬쩍슬쩍 말을 걸어주니 심심치 않았다. 그리고 늦은 시간, 어느 순대국밥집에건 언제나 혼술을 즐기는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이 있다.
가게를 이전하면서 원래 팔던 병천순대를 수암순대로 바꿨단다. "순대를 바꾸셨네요, " 이 한마디에 국밥집 손님들 사이에 때아닌 순대 논쟁이 벌어져서 각 순대의 맛과 식감에 대한 자뭇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어떤 순대는 뭐가 좋고, 어디 순대가 더 맛있고...... 개인적으로는 예전의 병천순대가 촉촉함이 더 해서 좋다. 이 집은 순대를 쪄서 내는 것이 아니라 썰은 후에 육수에 토렴을 해서 내는 것이 특징이다. 병천순대는 야채 순대인 반면 수암순대는 고기 순대라서 쫄깃한 식감이 더 강하다고 한다. 어쨌거나 순대는 참 맛있는 음식이다.
순대 맛이 변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국물 맛과 주인장 부부의 얼굴을 다시 만나서 반가운 혼술이었다. 또다시 마음이 헛헛해지만 나는 순대국밥 한 그릇을 찾아서 이웃 동네로 향하리라. 순대국밥집, 그곳에 나의 구원이 있다 그러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