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가을에는 국화차 한 잔 정도는 마셔줘야 한다. 노란 국화 색 가득한 찻잔을 손에 쥐고 온 몸으로 들이키고 나서야 비로소 가을이 온다. 제철 꽃차를 마시면서 부쩍 변해버린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일종의 계절 의식이자, 소박하지만 확실한 일상생활의 사치다. 겨울에는 매화, 봄에는 목련꽃,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국화. 몽원다인의 계절맞이 꽃차 라인업이다.
꽃차는 투명한 유리 다관이나 개완에 우려내어 마실 것을 권한다. 차가 우러나면서 꽃잎이 펴지는 모습, 활짝 벌어지고 난 후의 모습을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100ml 정도 용량의 개완에 2그램 정도의 국화차를 넣고 끓는 물을 넣어 1분 정도 우려 가며 마신다. 국화차는 오래 우려낸다고 쓰거나 떫어지지는 않는다. 유리 다관이나 개완에 우려 마시고 난 후에 다시 끓는 물을 넘칠 정도로 붓고 뚜껑을 닫아 놓으면 며칠간 꽃잎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끓는 물을 부어 소독을 하고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다. 며칠 뒤에 찻잎이 변하기 시작하면 차를 버리고 개완을 깨끗이 씻어줘야 한다.
여기서 잠깐, 국화차를 아주 진하게 우려낸 찻물과 청주(사케)를 섞어 칵테일로 만들면 국화주가 된다. 앞서 소개한 양의 두배인 4그램 정도를 넣고 5분 이상 우려내면 적당했다. 찻물을 식혀서 섞어도 좋고, 따뜻한 찻물 그대로 써도 뜨뜻한 데운 청주 기분이 난다. 농도는 취향에 따라 적당히 가감을 하면 되는데 국화 꽃송이를 한 두개 술잔에 넣으면 더욱 운치가 있다. 청주 말고 소주나 보드카 같은 맑은 술을 섞어도 괜찮을 듯한데 직접 시도는 해보지 않았다. 주말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서 국화차 한 잔, 국화주 한 잔 돌아가면서 들이키다 보면, 내가 가을인지 가을이 나인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차는 숨어서 혼자 마시는 게 제맛이다. 그러나 꽃차만큼은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마시고 싶다. 계절 맞이의 정취를 더불어 즐기고 싶고, 꽃차의 아름다움을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그런가 보다. 숨결이 향기로운 님과 함께 국화차 한 잔 더 하고 싶어 지는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