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다담잡설

현실을 직시하기

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by 몽원다인

마신 차: 매화차. 10송이, 95도, 30s-20s-30s


코로나19의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 이때,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기에 딱 좋은 때다. 봄볕이 좋아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뒤적여 본다. 유발 하라리의 가장 큰 장점은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탐구한다는 것이다. 하라리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위빳사나 명상을 하며 본질을 보기 위한 연습을 한다는데, 명상 훈련이 이러한 역작을 쓸 수 있는 저력이 아닌가 싶다.


버스나 기차의 공기를 조금만 들이마셔도 병에 걸릴 것 같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짓누른다. 주변 동료들의 눈에서 그런 공포감을 발견하는 것도 고역이다. 지옥도의 생중계를 잠시 접어 두고, 창밖의 매화향을 대신할 매화차를 한잔 마시며 호흡을 골라 본다.


이 상황에서 유발 하라리에 빙의하여 현실을 직시해 본다. 아니, 노력을 해본다.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죽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의 상황을 차분히 정리해 본다. 일단 감염 확률은 지난달 말 대구에서 신천지가 열린 이후로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계속 의심 환자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고. 그러나 사망률은 일반 독감과 유사하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거의 확실하게 내년 삼일절에도 나는 브런치에 시덥잖은 잡설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고, 또 뭘 할 수 없을까? 증상이 없는 감염자와 접촉하는 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다. "나 바이러스에 걸렸소"라고 써붙이고 다니지도 않고, 무증상 감염도 있다고 한다. 기침이나 콧물 증상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더 조심할 수는 있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지만, 국민행동 수칙이 알려주는 30초간 손 씻기, 외출 시 마스크 쓰기, 증상이 있을 때 자택에 머물기 등은 대부분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중에 외출 시 마스크 쓰기는 나에게 증상이 없는 한 지키지 않으려고 한다. 대규모 종교 집회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대구를 다녀온 적도 없어서 스스로 판단하기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확률이 낮다.


안 그래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고 난리인데 나보다 더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다른 이용객들이 불편해하는 듯해서 착용하려 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감염을 시키지 않을까'하며 불편하게 쳐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거나 그래서 마스크 하나를 계속 재사용하고 있다. 어차피 예방용이 아니라 심리적 위안용이니... 마스크 색이 검정이라 다행이다.


하나 더해서, 동선과 만나는 사람을 기록하고 있다. 혹시라도 감염이 된다면 역학 조사를 더 빨릴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 한시가 아까운 공중 보건 인력이 나의 지지 부리 한 신용카드, 통화 기록을 조회하고, CCTV를 돌려보는 수고를 덜어 주고 싶다.


만약에 코로나19에 감염이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독감 앓듯이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플 거고 한 2, 3주간 격리되어 치료를 받을 거다. 강제로 푹 쉰다고 생각해야겠다. 그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모두 연락을 돌릴 거다, "아이쿠, 나 걸렸어요, 당신도 찝찝하면 진단을 받아 보세요. 나는 푹 쉬고 완치해서 돌아올게요." '코로나19에 걸리면 민폐다, 벌금을 물린다' 이런 얘기들이 도는데, 내가 조심한다고 100%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비난할 일은 더욱 아닌 듯하다.


"병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 "라는 게 요즘 자영업자들 얘기다. 걱정이 되어 단골 맥주집 사장에게 연락을 해보니 오는 손님이 없어서 가게 문을 아예 열지 않는다고 했다. 매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약속을 하고 잠깐 들러 맥주를 캔에 포장해 왔다. 이렇게 힘들 때가 단골로서 의리를 보여야 할 때다.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다른 단골집 순례를 다녀야겠다.


우리들이 공포감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 현실을 직시하고, 리스크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조금씩 살아내야겠다. 우리 모두를 응원해 본다. 1년 뒤에 코로나19를 담담하게 회고하며 웃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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