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문산포종차. 2.5g, 95도, 50s-30s-50s-1m10s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인가, 부쩍 주변에 이별이 잦다. 연초부터 얼굴만 알고 지내던 대학 동기 녀석의 부고가 오더니만, 며칠 전 회사 동료의 부음을 들었다. 무엇보다 먼저 고인들을 추모하며 차 한잔씩 올린다.
둘 모두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기에 충격적이었다. 수많은 왜?가 따라붙지만, 남은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우울증 때문"이라는 짧은 답만 붙들고 허망할 뿐이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일견 이해를 해보려 하지만 남은 사람들에게 끼치는 폐가 너무 크다. '따뜻한 말이라도 더 건넬걸, ' '좀 더 적극적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 보라고 권할걸'이라면서 남은 사람들이 지고 가야 할 마음의 빚과 자책감이 크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안락사 문제가 공론화되고, 점차 받아들여질 것이라 전망한다. 수명 연장이 무의미한 단계에서의 안락사뿐만 아니라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의 조력 살인도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휴머니즘이 우리 세대의 정신세계를 점령하고 있지만, 의미 없는 생명 유지,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삶 그리고 품격 있는 죽음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확대되리라. 골방에서 홀로 맞이하는 두려운 죽음보다는 가족과 친구들의 이해를 구하고 편안히 가는 죽음이 낫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죽음에 대해서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른 동료들 모두 내색은 않았지만 큰 충격을 받았고, 조금씩 극복을 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가까운 동료들에게 쪽지를 보냈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라고. 우리 모두 옆에서 들어주고, 힘든 짐을 나눠 들어주겠다고. 슬프면 펑펑 울어도 된다고. 우리도 옆에서 같이 울어줄 테니 흘려보낸 눈물의 양만큼 홀가분해질 거라고. 주변에 누구라도 은연중 내게 구조 요청 사인을 보낸다면 그것을 놓치지 말고 두 손을 꼭 잡아 줘야겠다.
우리 모두 아픔을 품고 산다. 그 아픔을 견디는 감수성이 조금씩 다른 듯하다. 사람마다 생긴 것이 다르 듯이. 그 때문에 선택의 결과가 달라지겠지. 내가 품고 사는 아픔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나의 생살을 찔러대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아프다. 그래도 나는 펑펑 울면서 아픔을 데리고 사는 쪽을 택하겠다. 차 한잔 두 잔으로 살살 달래어 가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