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술: 연태고량 120ml, 크라운 생맥 1,000ml
유학시절 지도교수님의 첫 강의 주제는 행복이었다. 맞다, 행복. 경제학 수업이었는데, 고전파 경제학의 비용과 편익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 행복의 요인이 무엇인가'가 주제였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날씨, 유전적 요인 등등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TV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본능적으로 남과 자신을 계속해서 비교를 한다. 일종의 생존을 위한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남과 비교하여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거나 빼앗아서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TV를 보면, 결코 현실의 내가 따라 할 수 없는 화려한 장면들을 접하면서 상대적인 빈곤감에 빠져서 불행해진다고 했다. 이 얘기를 하면서 당신의 오두막에는 TV가 없다고 얘기하셨었다. 100% 공감을 하였다.
요즘에 이 강의를 다시 듣는다면, 지도교수님은 아마도 Youtube, Facebook, Instagram 이 우리를 더욱 격렬하게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씀하실 듯하다. TV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우리의 관심사를 폭격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화면 속의 글래머러스한 장면들을 연출하기 위해 사실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첨단기술(뽀샵)까지 동원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나는 저렇게 안되나'하면서 좌절한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갈파한 맨유 퍼거슨 감독은 현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SNS를 멀리 해왔다. 아니, 사실 거의 하질 않았다. 페이스북 친구 찾기 정도? 내 일상이나, 하는 일이 남들 보기에 멋져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나 몸매가 모델만큼 매력적인 것도 아니어서 남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
이렇게 완고하게 SNS를 멀리 해왔는데 다도 수업을 위해 다기와 다구 사진을 웹에 올리고 공유할 필요가 생겼다. 몇 가지 옵션을 고민하다 인스타그램에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기로 하였다. 사진을 올리기가 편리하고, 해시태그를 붙여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그렇게 첫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나니, 여기저기서 팔로우 신청이 들어왔다. 팔로우 신청에 맞팔을 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유통되고 있는 것이었다. "나 예쁘지," "이거 맛있어 보이지," 말고도 유용한 정보들이 대부분 다 모여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웬만한 다원과 도예가들과 모두 연결될 수 있었다! 새로운 차도매상과 멋진 찻집을 발견한 것은 덤이었다. '이야, 맛집들이 죄다 여기 모여 있었네!' 편견에 빠져서 나는 정말 고루했었다. 어떤 잔치에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갈 때, 거기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적어도 그것들을 확인해주는 수고는 사회인으로서 감수해줘야겠다.
쓰고 나서 보니, 이건 사회부적응자의 인스타그램 적응기 또는 정착기 정도로 읽혀야겠다. 몽원다인의 인스타그램 계정 주소이다: https://www.instagram.com/mongwon_tea/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거슨 뻔뻔한 인스타 계정 홍보이다. 가보시면 알겠지만, 보면서 부러워할 것은 1도 없는 밋밋하고 건조한 사진 앨범이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국보급 청자 잔을 보면서 부러워한다면 답은 없다. 다도 수업을 하면서 찻잔, 주전자, 거름망 따위를 설명할 때 시각 자료로 사용하려고 만들었다. 다기에 관심이 있다면 방문을 권한다.
여담: 도통 모르겠다. 왜 나의 인스타그램 검색창에는 그리 헐벗은 여인들의 사진이 많이 보이는건지. 나의 게시물과 전혀 관련이 없는데 무슨 이유로 그런 사진을 보여주는 걸까? 차를 즐겨 마시고 예쁜 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헐벗은 여인들을 좋아한다는 통계라도 있는걸까? 물론, 감사히 잘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차와 관련된 사진을 더 많이 추천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