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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담잡설

마스크 휘날리며

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by 몽원다인

마신 차: 연꽃씨앗차. 2g, 99도


마스크를 일광 소독해서 재사용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마트에 갈 때만 착용하니까 견딜만하다. 이 시국에 회사에서 맨 얼굴로 다니는 게 못내 불쌍했는지, 또는 못 생긴 얼굴을 좀 가리고 다니라는 건지 어떤 귀인이 금쪽같은 마스크를 두 개나 줬다. 다른 귀인은 구석구석 소독하는데 쓰라고 75% 알콜 분무기를 건네주고 가기도 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서로 돕는 인간의 이타심을 보면 코로나19나 기후변화의 환난 속에서도 인류 문명이 멸망하기는 참 쉽지 않겠다는 확신이 든다.


코로나19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전 세계 금융 시장은 바닥을 모르게 추락을 하고,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존버" 밖에 없는 가혹한 시절이다. 연하게 우려낸 연꽃씨앗차 한잔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니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생각의 꼬투리들을 붙잡아서 두서없이 끄적여 본다.


날이 추워지고 나서야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어려운 시절은 마치 체와 같이 인간관계를 탈탈 털어 걸러내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다. 친구인 줄 알았는데 비올 때 우산을 뺐는 사람도 있고, 옆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이 되는 친구도 있다. 다른 사람은 어찌 됐건 나 혼자만 어떻게든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 내가 없어도 잘 살 사람이니 신경을 끄자. 이 참에 '내가 이런 사람하고 엮였었다니!' 싶은 사람과는 조용히 연락을 끊을 일이다.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과는 신뢰를 더 다지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나 또한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늘 속에서 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느티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자신들의 실황연주를 녹화한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콘서트를 열지도 못하고, 사람들도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집에서 온라인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으라는 의도다. 고맙기도 하고, 이 와중에 음악 감상을 하겠다는 유럽 사람들의 멋과 여유가 부럽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도 과거 공연 녹화를 매일 한 편씩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예술의전당도 유튜브에서 공연 실황 녹화인 "Sac on Screen"을 무료 제공하기 시작했다. 요즘 하루하루가 음악이 필요한 순간의 연속이다.


힘든 순간 나에게 위안을 주는 음악을 묻는다면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말러의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또를 꼽는다. 둘 다 느리고 서정적인 곡인데 영혼을 차분하게 가라 앉혔다가 서서히 띄어 올려주면서 다시 희망을 찾아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전해 준다. 보칼리제를 특히 애정 하는데, 기악이든 성악이든 누가 어떤 형태로 연주를 하더라도 꼭 찾아가서 보는 편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는 박수 대신 눈물 한두 방울을 예약해도 좋다.


코로나19로 불안하다.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신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만 같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개인위생수칙을 다 지키고 나면, 그다음은 모두 하늘에 달렸다. 산 속이나 무인도로 들어가서 아무 사람도 만나지 않고 셀프 격리를 한다면 모를까. 이렇게 셀프 격리를 하면 코로나19에는 확실히 안 걸리겠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일까? 주변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독야청청한 삶?


두려움과 공포로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나의 일상을 살아내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나에게 구원을 주는 음악을 들으면서 용기를 얻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나의 일을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눈앞의 지옥도를 바라보면서도 '언젠가는~'이라면서 낙관의 미소를 지어야지. 특히 아파 쓰러질 때까지도 유머 감각은 잃고 싶지 않다. 죽음의 순간을 맞아야 한다면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들으면서 덤덤히 받아들이리.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죽음, 피하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깨끗하고 품위 있게 맞이하고 싶다.


(사족) 그 구하기 어렵다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이 와중에 자랑질이다). 온라인 예매가 오픈하자마자 동료와 함께 달라붙었는데 싱겁게도 쉽사리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조성진 콘서트의 예매 경쟁률이 이렇게 낮은 것은 처음 경험해 봤다. '코로나가 인생에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공연까지 아직 몇 달이 남아 있는데, 부디 예정대로 열리기를 손 모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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