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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Mar 23. 2020

나름 극한직업, 마감노동

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동방미인차. 3g, 90도, 50s-30s-50s-1m20s 


3월 초까지 1년 동안 주간지 편집일을 했다. 해외 동향을 수집해서 가공하여 주간지 형태로 제공하는 일이었다. 1년 동안 제대로 마감노동을 겪고 이제 서서히 마감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돌이켜 보면 나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지난 1년간 마감 스트레스로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듯하다. 항상 우울하고... 당시에는 나 살기에 바빠서 몰랐는데, 끝나고 나니 알겠다. 미안한 마음이다.


매주마다 꼬박꼬박 마감이 돌아오는데 정말 농담 아니고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인쇄소에 원고를 보내고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새 원고 구상과 작성에 돌입해야 하니 말이다. 시간의 압박도 있지만, 작성을 위해 여러 명이 달라붙다 보니, 나 하나가 삐끗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컸었다. 내가 늦으면 다른 사람들도 일을 진행할 수 없다는 부담감이다. 마감노동은 나름 극한직업이다. 


1년간 편집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마감에 적응을 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었나 보다. 마감노동을 그만두고 나니 잔뜩 긴장해서 뭉쳐 있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이 서서히 이완되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 한 번에 확 풀려버리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풀린다. 도대체 얼마나 단단히 뭉쳐 있었던 거야... 


편집일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기분을 바꿔 보려고 머리 스타일이며 옷 입는 스타일을 바꿔 보기도 하고, 취미생활에 조금 더 열정을 쏟아 보기도 했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내가 변할지라도 마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랬던 마감 스트레스가 다른 팀으로 옮기고 난 후에서야 서서히 풀리는 것이, 역시 원인 치료가 중요하다. 주변 동료들로부터 '얼굴이 밝아졌다'라는 인사를 계속 받고 있는 중이다. 


주간지가 이렇게 힘든데 일간지는 얼마나 더 힘들까? 신문 쉽게 던져 버리지 마시라. 마감 노동자들의 피땀 눈물을 생각한다면, 두 손으로 고이 접어서 버릴 일이다. 편집일을 하면서 왜 많은 기자들이 폭음을 하는지 이해가 갔다. 짧은 시간에 빨리 마시고, 치우고, 또 쓰러 가야 하니까. 그리고 마감의 압박을 조금이라도 잊어버리려는 게 아닐는지. 


우리 주간지의 기사를 복사하다시피 해서 게재하는 주간 전문지 기자가 있었다. 아주 상습범이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이 사람이 이해가 갔다. 얼마나 기사 쓰기가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마감노동을 하면서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독자들의 피드백이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슨 반응을 접하면 내가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무플이 가장 무섭고 서운하다. 


마감노동을 마치고 나니 비로소 창조적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완벽한 차 한잔을 위한 레서피" 를 마감(이 단어를 여기에 또 써야 하다니!) 해야 하는데, 농담 아니고 지난 1년 동안은 원고를 취재하고 쓸 에너지를 찾을 수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여력이 생긴다.


지난 1년은 나에게 잃어버린 1년과도 같다. 코로나19 때문에 올해의 봄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이번 봄이 작년 편집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맞이했던 암울한 봄보다 훨씬 찬란하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마감노동이랄까. 


당연한 얘기지만 이 글은 마감은 1도 없이 멋대로 쓰여졌다. 당분간은 잦은 마감이 없는 일만 하고 싶은 바램이다. 그러나 세상에 마감이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은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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