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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Sep 13. 2022

여름 밤 해변에서 춤을!

수록되지 못한 에피소드 - 브라질 여행기 (Morro de SP)


여름 밤 해변에서 춤을!


살바도르에서 하루를 보낸 뒤, 새해를 맞이하기까지 이틀 정도 시간이 남아 근방으로 잠시 다녀올까 싶어 고민 중이던 찰나, 지인으로부터 살바도르 근처의 섬인 모후 지 상파울루 (Morro de Sao Paulo) 가 아주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잉? 상파울루? 내가 아는 상파울루는 저 밑에 있는 대도시인데… 뭔가 섬의 분위기가 상상되지 않았다. 곧바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화면 가득 파란 바다가 펼쳐졌다. 오호. 호스텔에 짐을 놓고 1박 2일로 다녀와도 괜찮다는 호스텔 주인의 말에 따라 간단한 짐만 챙겨 그 곳으로 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푸른 바다를 가로지른 지 2시간 후 발을 디딘 섬은 의외로 북적이며 활기가 넘쳤으며, 섬이라 물자 보급이 어려워서 그런지 숙박 및 음식 값이 정말 상파울루만큼 비쌌다. 일단 바로 전날 급하게 예약하느라 섬 전체를 통틀어 딱 한 개 남은 듯한 4인실 호스텔에서 씻고 누워서 오늘 저녁에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더니 스페인어를 쓰는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하는 이 친구들은 아르헨티나 사람이었고, 친구 네 명이서 여름 휴가로 이 머나먼 브라질 북동부까지 온 것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분명 4인실인데 왜 그 친구들 네 명이 반으로 쪼개져 둘, 둘 + 나 로 구성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브라질 해변에는 아르헨티나 혹은 우루과이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자기네 나라에는 이렇게 예쁘고 햇살이 뜨거운 바다가 없기 때문에 휴가철마다 브라질로 날아와 해수욕을 즐긴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왼쪽은 칠레, 오른쪽은 브라질, 밑은 춥고 언 자국의 바다로 구성되어 있어 마땅한 해수욕장이 없을 것 같았다. 아하 이제서야 북동부의 많은 호스텔과 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스페인어권 남미 직원들과 관광객들의 존재가 이해되었다. 그들과 방에서 한참동안 수다를 떨다가 둘 중 몸이 조금 더 좋고 영어를 조금 더 잘하는 친구가 나를 초대한다. 


"이따 저녁에 호스텔에서 무슨 게임이 있다길래 할 건데 너도 할래?"

"Si, claro! (당연하지!)"


역시나 이들도 내가 혼자 있는 게 짠해 보였나 보다. 잽싸게 로비로 나가 나는 발견하지 못했던 흰색 보드판 명단의 맨 마지막에 내 이름을 적어둔다. 그리고 다른 방에 짐을 풀고 온 나머지 2명의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그들이 사온 맥주를 얻어 마시며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말한 게임은 비어퐁 게임! 오 얘기만 들어봤지 실제로는 처음 해 본다. 이 서구식 음주문화. 컵에 술을 가득 따라서 탁구대 위에 여러 개를 놓고 상대편 컵에 탁구공을 골인시키면 상대방에게 술을 먹이는 게임이다. 마시면서 계속 던지는 게임이라 후반부로 갈수록 술에 취해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친구가 된 아르헨티나 남자 한 명과 처음 보는 아주 예쁘고 앳되보이는 아르헨티나 소녀 4명과 한 팀이 되었다. 와, 무슨 요정족에서 온 소녀들 같았다. 어쩜 저렇게 하나같이 하얗고 가녀린지. 그녀들의 입에서 나오는 스페인어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만 스페인어를 못 해서 말이 전혀 안 통했지만 게임에 언어가 무슨 상관인가. 차례가 되면 실눈을 가늘게 뜨고 열심히 조준하여 탁구공을 건너편 맥주컵으로 던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웠다. 초보티 팍팍 내며 내가 계속 실패하는 동안 다른 팀원들의 탁월한 능력으로 상대방 컵이 딱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내 차례. 두근두근. 여기서 실패하면 저 예쁜 요정들의 입에서 스페인어 욕이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중과 동시에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퐁!!!


내가 넣은 마지막 공이 들어가 우리 팀이 이겼다! 나보고 분발하라며 박수를 치던 친구들은 모니카 최고! 를 외치며 십년지기 친구처럼 부둥켜안고 빙글빙글 돌며 승리의 세레머니를 만끽했다. 크 이 맛에 비어퐁을 하는구나! 맥주를 너무 마셔 빨개진 얼굴로 모두가 웃는다. 게임을 하면서 들이킨 술 덕분에 취기가 오르자 갑자기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 밤 바닷가에서 파티가 있다고 한다. 아니, 사실 이 곳은 거의 매일 밤 바닷가 파티가 있다. 이 친구들 아니었으면 오늘 밤 텅 빈 호스텔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남은 맥주를 홀짝일 뻔했다. 드디어!! 사실 ‘바닷가에서 밤에 파티하기’는 언젠가부터 나의 버킷 리스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리스트를 오늘 지울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친구들과 해변에 도착하니 이미 수많은 인파들이 각자의 그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그렇게 큰 규모일 줄 몰랐는데 그 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온 것 같았다. 음악이 나오는 커다란 엠프와 스피커는 또 누가 들고 온 건지 모래사장 위에 적당한 간격으로 놓아져 있고, 모두가 신고 있던 쪼리는 벗어 던진 채 너나 할 것 없이 삼바, 펑키, 팝 등에 맞춰 자유롭게 흥에 취해 있었다. 우리도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는 그룹에 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참을 추다가 뭔가 새로운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에. 차가운 모래를 맨발로 밟으면서 춤을 춘다는 것이 이렇게나 기분 좋다니!


발바닥과 발등에 느껴지는 모래의 촉감이 한 층 가볍고 자유롭고 시원하고 부드러웠다. 발이 움직일 때마다 튀기는 모래 알갱이가 종아리에 부딪히는 느낌도, 바닷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후끈한 열기를 살짝씩 잡아주는 그 느낌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 기분 좋은 자유로움은 당연히 나만 느끼는 게 아닌 듯했다. 이곳은 섬이고, 바로 앞에 파도가 철썩이는 곳에서 파티를 벌인다. 삼삼오오, 혹은 큰 무리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어떤 사람은 스피커를 어깨에 이고 춤을 추기도 한다. 그마저도 멋이라니. 이 곳 남미 사람들은 춤을 못 추는 사람이 왜 한 명도 없을까. 춤을 자주 춘다고 해서 실력이 느는 게 아닐텐데 말이다. 춤을 잘 추는 사람들만 춤을 추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몸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하기엔, 움직이지 않고 뻘쭘히 서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한창 흥에 취해 춤을 추고 있었는데 아르헨티나 친구들 중 한 명이 자꾸 내 앞으로 와 같이 춤을 추려고 한다. 아니 나는 혼자 추고 싶다구. 같이 추는 춤은 영 소질이 없을 뿐 더러 뭔가 나만의 자유를 침해 받는 느낌이 든 나는 ‘너와 춤추고 싶지 않아’ 라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이 친구는 자꾸 나를 잡아 끈다. 춤 추는 척 그 친구를 피해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다가 금세 피곤해진 나는 먼저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황홀한 바닷가 파티를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가는 게 살짝 아쉬웠지만 여행을 시작한 지 나름 시간이 흘렀다고 체력이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즐거운 놀거리라고 하지만 내 컨디션이 한계에 다다르면 적당히 즐기고 마무리 짓자는 게 내 여행 원칙이다. 오히려 버티고 질질 끌다보면 항상 끝은 좋지 않게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발바닥 가득 묻힌 모래를 털고, 혼자 밤공기를 마시며 걸어가는데 달짝지근하고 익숙한 냄새가 콧구멍을 통해 들어온다. 그리고 이내 시야에 들어온 타피오카 포장마차! (tapioca - 타피오카 가루로 만든 브라질식 크레페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좋아하는 타피오카는 딸기와 초콜렛 소스의 조합! 아주 기가 막히는 맛이다.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많이 파는 크레페와 비슷한데, 타피오카 가루를 깔아 살짝 굽고 그 위에 연유랑 누텔라 크림을 바르고 딸기 몇개 얹어 반으로 접으면 뚝딱! 쿨한 아주머니가 금세 만들어 주신 타피오카를 한 입 베어먹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춤을 추느라 아까 먹은 생선요리가 다 소화가 되어 배가 고픈 참이라 그런가. 이렇게 맛있는 타피오카는 브라질에 1년 동안 있으면서 처음 먹어봤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인생 타피오카를 이 곳 산 넘고 물 건넌 모후 지 상파울루에서 만나다니...! 그 자리에서 찹찹 손에 묻은 초콜릿 소스를 핥아가며 타피오카를 말끔히 먹어치우고 느긋하게 숙소로 돌아갔더니 친구들이 이미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니카? 우리보다 먼저 출발 했잖아? 어디 갔었어?"

"어? 빨리 왔네. 음.. 나 그냥 동네 한 바퀴 산책 좀 했어. 어우 피곤하다. 얼른 정리하고 자자"

피곤하다며 거의 도망치듯 자기들 무리를 빠져나와 인생 타피오카에 정신이 팔려 늦게 왔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옛 추억을 떠올릴 때 의외의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밤 바닷가의 파티보다 그 때 먹었던 타피오카가 먼저 생각나는 것처럼.



*분량 문제로 <우비보다 비키니를 택한 사람들> 에 수록되지 못한 에피소드, 아쉬운 마음에 브런치에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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