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선생님이 되어

미국 일상에서

by 류재숙 Monica Shim


"언니, 좀 도와주세요"

혼자서 스물여섯 명이나 되는 2학년 주일학교인 첫 영성체반을 지도하는 우리 성당 후배가 도움을 청했다. 풀타임 직장을 다니며 토요일엔 주일학교 봉사까지 맡아하는 후배의 요청을 차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함께 맡은 주일학교 2학년 첫 영성체반.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어찌하면 잘 보일까 분홍 스웨터를 꺼내 입고 미키마우스 브로치를 달았다가 떼었다가 부산을 떨었다. 남편은 누구를 만나러 가는데 그리 신경을 쓰냐 묻는다. 성당을 향해 나서는 마음이 괜스레 콩닥콩닥 들뜬다.


헌데 시작부터 전쟁이 따로 없다. 하나 둘 수업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한주가 지난 사이 제자리가 어디였는지 헷갈려 연신 묻고 여자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 떨기 바쁘다. 남자아이들은 여기저기 친한 친구를 찾아 장난을 쳐대고 여자아이들의 학용품을 괜히 뺏고 옆자리 친구에게 시비를 건다. 옆 친구의 이쁜 필통에 시선이 고정된 아이, 떨어진 머리핀 찾느라 책상 밑을 휘젓는 아이도 있다. 조용히 앉아 책을 펴라는 선생님의 지시는 아이들 귀 언저리에도 닿지 않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제자리에 앉히는 데만 20여분 교과서를 펴는데 10여분 걸린다. 게다가 한국서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영어로 하는 선생님의 지시가 뭔 말인지 귀에 들어올 리 없고 미국서 태어나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은 한국말로 된 교재를 이해할 수 없다. 요지경이 따로 없다.


후배가 영어로 수업을 시작하는 동안 보조교사로서 나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다가가 한국말로 통역을 해주고, 페이지를 찾아 책을 펴주고, 장난 삼매경에 빠진 남자아이들의 자리를 바꿔주고,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제자리에 앉힌다.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며 쫓아다니다 보니 30여분 만에 벌써 진땀이 난다.


하지만 내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 다시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게 새삼 신기하고 이쁘기가 그지없다. 천방지축 말을 안 들어도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게다가 “선생님, 신발끈이 잘 안 매져요.” “머리 고무줄 좀 매 주세요” 할 때는 할머니가 손주를 대하듯 사랑스럽기만 하다. 친구를 괴롭히는 녀석조차도 밉지가 않다. 결국 후배에게 “언니, 아이들이 말을 안들을 땐 혼도 내야 해요”란 지적을 받기까지 했다.


2분도 채 집중이 안 되는 이 개구쟁이 녀석들을 보니 대학 때 처음 맡은 주일학교 교사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도 처음 맡은 반이 초등학교 2학년 반이었다. 명분이 선생님인 나는 교리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장난치고 떠들다 수녀님께 주의를 받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그지없이 이뻤고 난 아직 철없는 초짜 선생님이었다.


내 반엔 쌍둥이 남자애들이 있었는데 어찌나 얼굴이 똑같은지 번번이 이름을 바꿔 부르곤 했다. 그런 나를 녀석들은 유난히 재미있어했고 나를 자주 골리곤 했다."선생님 제가 누구게~요?" 수업 시작마다 두 녀석은 내게 다가와 씩 웃으며 누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테스트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여겨봐도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쌍둥이 녀석들의 얼굴에 난 번번이 다른 녀석 이름을 대곤 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배를 잡고 웃어댔다. 이렇게 수업시간마다 선생님을 시험하고픈 고얀 녀석들의 함정에 매번 걸려들었다.


봐도 봐도 똑같은 녀석들을 구분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드디어 차이점을 발견했다. 유레카! 2학년 시기에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시기라 한 녀석의 앞니는 한 개가 나오고 있었고 다른 녀석은 두 개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나의 발견을 알리지 않은 채 어느 날 큰소리쳤다.

" 이제 선생님은 너희 둘 누가 누군지 알 수 있지롱!"


그러자 반 아이들 전체가 선생님이 진짜 아는지 보자고 수군대며 내기를 걸었다. 반 아이들은 두 녀석을 둘러싸고 난 뒤돌아서고 쌍둥이가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내 앞으로 왔다. 얼굴만 봐선 여전히 헷갈리지만 짐짓 아직도 도통 모르겠는 체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뜸을 들여 녀석들이 웃기만을 기다렸다.


쌍둥이 녀석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하얗게 솟아난 앞니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때를 놓칠 새라 쾌재를 부르며 “너는 안드레아, 넌 야고보." 단박에 알아맞혔다. 두 녀석은 처음엔 짐짓 놀라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다시 해보자 했다. 몇 번을 다시 반복해도 틀림없이 알아 맞히자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어리버리하던 선생님이 웬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아이들이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비~밀. 선생님만 아는 방법이 있지!" 그때 아이들의 억울한 듯 신기한 듯한 그 표정이란!


35여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맡게 된 2학년 주일학교.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여전히 2분도 채 집 중이 안되고 천방지축이지만 변함없이 사랑스럽다. 혼돈 속에 30분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일교시 수업이 마쳤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마치 열 시간은 잡혀 있은 듯 자유다! 하고 성당 마당으로 달려 나가는 녀석들.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성모님 상을 바라보니 그분도 허허 웃고 계시다. 햇살도 아이들도 눈부시다.


친구들과 뛰어다니던 요셉이 괜히 내 옆구리를 툭 치곤 달아난다. 간식시간에 안젤라는 내 접시에 귤을 건네주곤 부끄러워 숨는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돼 영어 수업이 힘든 현지는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 안긴다.

“선생님이 좋아요.”

“나도 현지가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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