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차박 캠핑을 하다
El Capitan State Beach에서 2021. 5.15
by 류재숙 Monica Shim May 19. 2021
부부로 오래 사니 서로 닮아간다. 남편의 행동이나 말투에서 내 모습이 보이고 내게서 은연중 남편의 성향이 보이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여행 선호도이다. 지구 곳곳 여행을 꿈꾸던 내가 예전의 씩씩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갱년기가 되면서 몸 구석구석 아프단 핑계로 칩거를 즐기는 의기소침한 아줌마가 돼버렸다. 반면 집이 제일 좋다며 재택근무가 딱 적성이라던 남편은 오히려 요즘 아메리카 대륙을 차로 다녀보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유튜브를 통해 차박과 RV캠핑을 고시 공부하듯 하던 남편은 RV를 직접 제작해 보겠다고 도전장을 던졌다. 한 곳에 빠지면 끝을 보고 마는 성격이라 과연 어떤 차가 완성될지 기대되지만 허리야 다리야 곳곳이 부실해진 내 몸이 과연 그 긴 여정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염려가 앞선다. 우리만의 RV가 만들어지기 전 준비작업으로 차박부터 해봐야 한다며 남편은 엘 케피탄 스테이트 비치 캠핑장을 일찌감치 예약해 두고는 손꼽아 기다렸다. 들떠있는 남편을 맞춰주려니 몸이 안따르고 몸을 따르자니 남편의 기를 꺾어야 하고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산타바바라를 지나 태평양을 바라보는 해안가 언덕에 위치한 이 캠핑장은 일몰이 황홀하다며 남편은 사진이 취미인 나를 유혹한다. "그렇다면!"하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설 수밖에. 차일피일 미루던 마음이 캠핑 전날까지 짐 싸기를 미루다 떠나는 날 아침 한 시간 만에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일기 예보는 흐림에 비 소식까지 있다.
여행이란 떠남과 만남 그리고 되돌아옴이라 한다. 일상, 편견, 습관 같은 내가 갇혀 있는 것으로부터 떠나 생소함, 나와 다름, 새로움과의 만남이다. 떠나지 않으면 새로움을 만날 수 없다. 그리고 그 새로운 만남을 내 안에 품고 되돌아옴이 여행이다. 오늘의 짧은 하룻밤 여행으로 나는 무엇으로부터 떠나고 어떤 새로움을 만나 돌아오게 될까.
음악채널을 들으며 운전 중이던 남편이 유튜브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어주는 채널을 찾아줄 수 있냐 묻는다. "당신이 웬 파우스트?" 35년간 함께 살면서 책 읽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던 남편의 주문에 어울리지 않게 웬일이냔 반응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쩜 가장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더 컸던 걸까.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하고 단정 짓곤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부정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언젠가 후배가 어떻게 늙고 싶냐며 내게 물었다. 나는 당당히 "마음이 열린 사람으로 늙고 싶어" 했다. 그러나 현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열려있지 못하고 담을 쌓고 편견 속에 살고 있었나보다.
101 프리웨이를 따라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니 확 트인 태평양이 나타난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다. 흐린 날의 바다는 색이 없다. 주위에 벽을 쌓고 사는 나도 저 흐린 날의 바다처럼 무채색이지 않을까. 구름이 걷히면 바다는 하늘의 색을 투영해 푸른빛을 낼 것이다. 마음의 벽을 걷고 타인을 향해 열려있어야 나를 통해 그들의 색을 투영해 낼 수 있으리라.
해안가 언덕에 붉은 하이힐 조형물을 설치해 둔 게 보인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하이힐이라.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바다 건너까지 넘나들던 젊은 날의 이상을 저 하이힐은 꿈꾸고 있는 것일까.
인심 좋은 바바라 아줌마가 살 것 같은 산타바바라를 지난다.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한 도시는 언제 봐도 푸근하다. 멀리 미션 산타바바라가 보인다.
유튜브에서 읽어주던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이야기는 이제 마키아벨리 군주론으로 넘어가고 있다. 군주는 같은 역사, 같은 문화를 다스리긴 쉬우나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새 영토는 다스리기 어렵기에 직접 그 나라에 가서 통치하거나 식민 정부를 세워야 하니 군사력이 중요하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들이 캘리포니아를 개척할 때 성직자가 먼저 파견돼 미션 건물을 세우고 그 주변에 농장을 건설해 마을을 이루어 나갔다 한다. 성직자는 선교뿐 아니라 군인의 역할까지 했다 하니 금서였다던 군주론의 이론을 몰래 따른 것인가.
산타 바바라를 지나 얼마 안 가 캠핑장 싸인이 나온다. 세 시간 만에 도착이다. 첵인까지 시간이 남아있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해변을 걸었다. 바닷가는 한적하고 파도소리만 높다. 흐리던 하늘이 서서히 개이고 있다. 바다색도 점차 푸른빛이 돈다.
펠리컨 떼가 줄을 이어 날아간다. 바람을 맞서 가는데도 긴 날개를 펼치고 날갯짓 없이 바람을 타고 난다. 힘을 빼면 저리 바람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몸에서 힘을 빼야 해요." 수영 코치는 힘을 빼야 물 위에 뜰 수 있다 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니 물속으로 계속 가라앉고 가라앉는 게 무서워 힘이 더 들어가곤 했다. 세상살이도 힘을 빼면, 집착을 빼면 수월하게 살 수가 있는 걸까. 그 힘을 뺄 수가 없어 매일을 허우적댄다. 나이가 들면 힘을 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쉽지 않다 그게.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함께 바다를 바라본다. 멀리 서핑을 하는 청년은 파도를 멋지게 타다가 곤두박질 치다가 하며 끊임없이 재도전을 하고 있다. 노인이 낚싯대를 자전거에 싣고 달려온다. 기나긴 세월 그는 어떤 인생을 낚았을까 오늘은 또 어떤 날을 낚으려나. 바다에서 캠핑장으로 가는 숲길엔 많은 나무들이 아래로 휘어져 자라고 있었다. 세찬 해풍에 매일 조금씩 휘어져 마침내 누워버린 나무들. 세월의 거침에 휘어져 우뚝 서지 못하고 자라는 우리 모습이 거기 있었다.
2시가 되어 첵인을 하고 캠핑장에 짐을 풀었다. 텐트를 치고 짐은 텐트 안으로 옮기고 차 뒷좌석을 접어 침낭을 펴 침실을 만들었다. 텐트 캠핑할 때와 다르게 짐과 사람이 자리바꿈을 했다. 차박을 위해 배터리에 전기장판에 창 막이까지 철저하게 준비한 남편의 열정 앞에 이 나이에 웬 차박이냐며 핀잔을 주던 나도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떠나올 때 한 시간 만에 챙겨 온 캠핑장비와 음식은 소박하기만 하다.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으며 세상의 모든 음악 3집을 듣는다. 파도소리와 피아노, 기타곡이 어우러져 캠핑장은 낭만 가득한 콘서트장이 되었다.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진 길을 오른쪽으로 캠핑장을, 왼쪽으로 푸른 태평양을 보며 걸었다. 오월 중순인데도 바닷바람이 차다. 오후부터 구름이 걷힌 하늘은 푸른 제 빛깔로 바다를 칠한다. 잿빛이던 바다가 살아나고 있다. 담장 없는 캠핑장 이웃도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는다.
돌아오는 길은 모래사장을 따라 걸었다. 파도가 오가며 끝없이 바위를 깎아댄다. 긴 모래사장 끝에 조약돌이 가득한 해변이 이어진다. 긴 세월 파도에 모난 면이 다 깎여 둥글어진 돌들은 파도를 따라 자갈자갈 소리를 낸다. 이젠 이 조약돌처럼 둥글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고집스레 삐죽한 모양새를 드러내는 나는 얼마만큼의 파도를 더 맞아야 저 돌을 닮을 수 있을는지.
자세히 보니 수많은 돌들이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각기 다른 둥근 모양을 하고 파도에 서로 부딪히며 해안을 지킨다. 그 하나하나가 너무 예뻐서 주머니에 넣어올까 몇 번을 망설였다. 다름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우린 왜 다르다 해서 서로 적대하고 질시하며 살아왔을까.
두 시간을 걷고 오니 피곤해 차 뒷좌석 침실에 몸을 누였다. 호텔이 따로 없다. 설핏 잠이 들었나 보다 했더니 어느새 밖이 깜깜하다. 장작을 꺼내 모닥불을 피우다 무심코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쏟아진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별이 쏟아지는 밤을 맞을 수 있다. 도심의 불빛 때문에 우주가 별로 가득하다는 것을, 지구별 하나 외롭게 떠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이웃 별이 함께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벽을 쌓고 나만 바라볼 때 느낀 외로움이 사실은 주위에 별 같은 친구와 이웃이 가득 하다는 걸 보지 못했을 뿐이었음을 빛나는 별들이 가만히 알려주고 있다.
불장난이 역시 재미있다며 남편은 계속 장작과 집에서 가져온 박스 종이를 지핀다. 종이는 불에 넣자마자 활활 타올라 재로 높이 날아오른다. 저들도 한 때는 숲을 차지하던 당당한 나무였으리라. 나무들이 종이가 되고 재가 되어 다시 숲으로 날아간다. 그들은 숲에 내려 거름이 될 것이다.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누군가의 거름이 될 것이다.
한밤중 깨어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본다. 별빛 찬란하던 밤은 다시 구름으로 덮여 깜깜하다. 그러나 이젠 안다. 저 구름 너머엔 별들이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