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연 Oct 08. 2021

감정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상황과 공간에서 느끼는 같은 감정

날씨 때문에 걷기를 못하는 날에 잊지 않고 들어가는 방이 있다.


철학자이자 베스트셀러 ㄱ작가의 감정에 관한 책을 주제별로 하나씩 읽어보며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알아보고 경험을 공유하는 방이다.


항상 리스너로만 참여하고 있는데 며칠 전 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모더레이터인 그녀는 다른 스피커 없이 혼자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간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며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해 고통스럽다고 했다. 결국 그녀는 서러운 울음을 쏟으며 방을 닫고 말았다. 산책이 끝나갈 무렵 뒤늦게 들어온 방이라 오늘의 주제가 뭐였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다 그녀의 울음이 터져버린 것인지 맥락을 잡기 힘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나가버리면 어떻게요. 나는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어요.'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발을 동동 굴렸다. 그리고 이후 며칠간 피드에서 그녀의 방이 열려있으면 잠깐이라도 들어가 그녀의 기분을 살폈다.




나는 잘 알고 있다. 고통은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차분하게 책을 읽어주는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고, 자신의 감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공유하는 게 맘에 들었다. 그런 그녀가 울다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게요. 그러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인가, 아님 연민의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인가?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감정의 전이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거. 남의 결혼식 가서 눈물 짜기, 예능 프로보며 훌쩍이기,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 얘기하며 통곡하기 등등. 남 앞에서 별일도 아닌 거로 눈물을 쏟는 것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 중 하나이다. 하지만 시시 때때로 차오르는 눈물을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다행히 그녀는 내가 알 수 없는 힘든 그 시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지나가고 있는 듯 보였다. 평소처럼 오전 8시 30분에 방을 열었고 차분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었다. 며칠 그녀의 상태를 살피던 나는 그녀가 무척 대견하게 느껴졌다. 내가 뭐라고 말이다.




며칠간 제주에는 비가 연일 내렸다. 걷지 못하는 날이니 산책과 같은 시간대에 진행되는 그녀의 방을 찾아갔다. 오늘의 감정은 '회한'이다. 분명 모르는 단어가 아닌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되씹어 생각해보았다. '회한'의 사전적 의미는 -뉘우치고 한탄함, 이라고 한다. 그녀가 읽어주는 책의 한 구절에서는 회한이란 '엎질러진 양동이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회한의 감정은 되돌릴 수 없는 어떤 일로 인해 가슴속에 후회와 죄책감을 안고 사는 감정이다.


그녀는 어렸을 적 동생과 함께 집 밖을 나갔다가 동생을 잃어버려 무려 열흘만에 되찾았던 일을 얘기하며 회한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부모님의 애타는 심정과 원망 어린 눈빛, 책망의 말, 두려움과 죄책감이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지배했고 성인이 되고 나서야 겨우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가족에게 마음의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만일 동생을 영영 찾지 못했거나 나쁜 일이라도 생겼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아직도 두려움이 왈칵 올라온다고 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런데 그 실수가 엎질러진 양동이 안의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면 이건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과 함께 죄책감을 불러온다. 그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을 묵직한 회한이라는 감정에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살면서 크게 회한을 느낄만한 일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앞으로도 없길 바란다. 너무 큰 고통은 마주하고 싶지 않다.) 때로는 바보 같은 실수에 두고두고 이불 킥을 하기도 하고 뼈 맞은 팩트에 움츠려 들어 한동안 바닥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 같은 기분이 된 적은 종종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회한이라고 불릴만한 깊은 후회나 한탄은 아닐지언정 두고두고 곱씹어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는 나이차가 제법 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그 애가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였나. 암튼 한 때 등골 브레이커라는 닉네임을 달고 불티나게 팔리던 노스페이스 패딩이 전 국민의 교복 화가 된 듯한 시기가 있었다. 얼마 전엔 블랙 롱 패딩, 그다음 해엔 양털 플리스가 그랬지 아마. 어엿하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동생에게 누나 노릇을 한번 하고 싶었다. 동생과 함께 당당하게 백화점에 들어갔는데 50만 원을 호가하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사주기에는 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이 그 비싼 패딩을 만지작 거리는 그 손길에서 그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만 나는 외면했다. 결국 내가 베풀 수 있는 한도 금액 안에서 겨울 점퍼를 하나 사주고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는 길 내내 후회를 했다. '50만 원 쓴다고 당장 통장이 빵구 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사줄걸.'


그때 그 일이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는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후회의 감정이다. 나는 그 후로 이런 종류의 후회 따위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사줄 거면 돈 따위는 계산하지 말자. 후회 없을 만큼 하자.' 나는 이런 다짐으로 작은 회한의 감정을 극복했다.


아마도 모두에게 회한까지는 아니더라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실수에 자책하고 죄책감을 끌어안고 사는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죄책감을 떨쳐내는 건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신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과 고통을 준다'라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는가. 부디 질퍽거리는 그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와 귀중한 인생의 교훈을 하나 얻었다 생각하길 바란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간 성숙한 당신이 되길 응원한다. (이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