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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Apr 14. 2017

집 지어서 남주자

삼박사일 집짓기

뭐, 살다보니  절대로 내가 할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일들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때가 더러 있어왔긴 했다. 그런 일들중의 하나는 집짓는 일을 하러 멕시코 국경을 일년에 너댓번씩 넘나드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더러"라고 말하기도 민망하게 "자주" 안하던 일을 하게 된 고비가 있긴 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불경기 직격탄을 맞고서 미국 부동산 경기가 얼었을 무렵, 나는 집을 잃었다.

유지하기 힘들어 집을포기하고 이사나왔을때 제일 달라보였던 대상이 홈리스들이었는데, 붐비는 신호등앞에서 혹은 굴다리 밑에서 모여 길바닥 아무데서나 구걸하고 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정말 그들의 처량함이 내 등에 업혀올까바 너무나 무섭고 서글펐다.

집없는 서러움이야 동서고금을 막론 하고 다들 말하는것이지만, 그 때의 망하기 도미노의 시류에 정통으로 올라타서는 가진것 죄 다 털리고 바닥에 닿았을때는 그 서러움과 허망함에 정신을 수습하기도 힘들었다.

하여,  도둑맞은 그 마음을 달려보려고 나처럼 망해서 슬픈 사람들이 모여있을법한  동네의 작은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후질근한 그 교회  사람들이(대부분  나처럼 월세사는 사람들이다) 연휴 때만 되면 각자의 차와 트럭에 연장을 싣고 모두들 집을 지어주러 어딜 간다고  하는 거였다.


어딜, 가신다고요?

네,엔세나다요. 멕시코요. 학교도 짓고, 기숙사도 짓고...


길어봐야 연휴는 금요일 오후부터 쳐도 만 삼일 뿐인데, 아니 무슨 삼일만에 집을 짓는다는건가 싶었지만, 그닥 궁금하지도 않고 내가 참여할 일은 전혀 아니라 생각했으므로 나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나로서는 내  집 잃고, 차 잃고, 관계들도 다 잃은 그야말로 제대로 망한 주제에 내가 남을 돕는다는건 생각할수 없는 일이었다.

일년이 지났다.

여전히 그들은 행색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 같아 보이는데, 희안하게 연휴뿐 아니라 그냥 주말에도 때때로 연장을 들고 삼삼오오 멕시코나 인디언 마을이나 미국 시골 구석으로 남의집을 지어주러 떠났고....돌아왔다. 그때마다 내가 백설공주는 아니었어도, 시간이 갈수록 친근함이 더해져 식구처럼 된 난장이들을 출근시키는 심정으로 그들을 배웅하고 맞이하게 되는것이었다.

자연히, 한번쯤은 따라나서고 싶은 생각이 스물거리고 올라왔다. 그러나 동시에 .... 나는 벌레도 싫고, 더러운거 못참고, 잠자리 바뀌는것도 싫고..등등 ..궁시렁 궁시렁 가기싫은 변명또한 샘솟듯 올라왔다.

그러다 내가 처음 따라 나선건 애리조나 인디언 마을에 짓게 되는이층건물 때였는데 , 굳이 따라나선 이유를 대자면  인디언들에 대한 호기심이 컸기때문이었을 것이고, 국경을 안넘어도 된다는 안도감때문이었을거다.  그때가 2012년이었는데,  그 때를 시작으로 이제는  멕시코 국경을 미국의 연휴란 연휴때마다 넘어서 가게 된것이다...남의 집 지어주러!




그들은 그냥 가난하기만 한게 아니었다.

그들은 가난에 익숙해있었고, 다르게 살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를 써볼수도 없이 가난에 지쳐보였다.

흙바닥에서 아기를 낳고, 먹고, 자는 그들을 위해 침대부터 만들어주는 일을 시작했다는 이 교회의  가난한 이들은, 생업을 뒤로하고 휴일때마다 그렇게 무리지어 내려가서 집짓기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버린 냉장고를 주어다 찬장으로 쓰고있다
개수대이자 샤워실이되는 유일한 지하수




내려갈때는 현지인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각자 먹을것과 쓸것을 다 챙겨가느라 부엌살림도 꽤 많았지만, 가능한 가져간 재료로, 도구로 그들의 부엌 한켠에서 몇십명의 일꾼들 밥 해대는 일도, 현지인들과 나눠먹는 그 일도 축제처럼 느껴졌다.


항상 같은 장소에 연달아 갈때라도 예상치 못한 사건들은 늘 있지만...새벽부터 밤까지 , 남녀노소 달라붙어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그러다 못에 손이 찔리거나 다치기도 하는 아찔한 때도 있지만 ,세워진 벽에 전기선을 넣고 ..드디어 떠나올때쯤 그 건물에 전기불이 들어오는 순간을 보며, 무리들은 얼싸안고 내집 인듯  그. 저. 기쁘다!


더 있다 가라고 해도 망설임없이 뿌리치고 도망치듯 차에 오르지만, 삼박사일의 쉼없는 노동과 매번 달라지는 작업현장들 마다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말할수 없는 보람과 행복을( 극한 노동뒤에 오는 생각의 비워짐이 나에겐 제일 큰 )선물로 받게 되는것이었다.


차에 올라 미국으로, 엘에이로 돌아오는 그 길은

가진것 없는 이민자의 보잘것 없는 초라한 집으로의 귀향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희망을 전해줄수있었던 기쁨과 더불어 지금 내가 찾아가 피곤한 몸을 누일 나의 소박한 공간이 정말 "내 집" 으로 확인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 순간들이 매번 거듭되면서, 나는 집에 대한 나의 고집과 편견과 기대를 버리고 내 인생에서 일어난 쓰라린 사건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많은것을 소유하고 살아왔는지, 필요가 아닌 욕구에 휘둘리는 과소비 생활이 얼마나 나자신을 더욱 목마르게 했는지 말이다.


과연 세상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찾아가 집을 지어주는 시간동안 열어젖히고 들여다 보게된 그들의 삶은  가진것 여하를 막론하고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이란  그 한계 안에서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앞에 서서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향하고 살아왔던 것인지...

매번 짐을 꾸릴때마다 나는 그 건축여행에서 점검받게 되는것 같다.


집은 우리에게 쉼을 준다.

집은 우리를 숨겨주고, 품어주기도한다.

집은 눈에 보이는 가치보다 안보이는 큰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세운 울타리와 지붕아래서 공부하고, 먹고, 자고, 성장해나갈 수많은 영혼들을 향해 그 집들이 잘 버티어서서,  갈데없고 외롭고 가진것 없는 이들을 품어주길 기도한다.

우리가 쏟은 땀과 눈물과웃음과 고통들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거름이 되어서 단 한 사람이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잘 성장하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이번 연휴인 memorial long weekend 에도 기숙사를 지으러 연장 챙겨 떠날것이다.

샌디에고 들어가기전 휴게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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