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시간을 나누는 귀하고 귀한 일
2020년은 순식간에 시작했다.
아들의 샌프란에서 뉴욕으로의 대륙간 이사를 도왔고, 바로 뒤이어 미시간에서 있었던 고모님의 장례식을 다녀와서 호되게 앓았다. 몸과 마음과 밥벌이로 하는 일들의 공백을 미처 수습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던 때였다.
그렇게 하드코어로 초반부터 몰아치더니, 2020년은 3월부터 겉은 고요하나 속은 요동치는 위장된 평화의 강제 자숙기간을 온 인류에 선물했다.
희한한 고요함과 오래간만에 맛보는 타의에 의해 “갇힌” 생활은 의외로 평화롭고 단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매일이 단순했지만, 매일 수만 가지 생각들이 시간을 채웠다.
일상은 바쁘지 않은 어색함으로 가득하고, 아침마다 눈을 뜰 때의 기분은 조금씩 달랐다. 그 시간들을 지나고 지금 10월. 아직도 세상은 covid19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어렵게 일상을 회복하려고 애를 쓰지만 불행히도 흘러간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들은 우리가 변하도록 등을 떠민다. 뉴 노멀이라나 뭐라나.
최근에 오랜만에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고 만난 지인들이 몇몇 있었다. 실내에서는 식사할 수 없다는 새로운 코비드 규칙 때문에 어설프게 만든 주차장에 자리한 식당의 간이 테이블에서 우리는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파리와 싸우는 것인지 , 보이지 않는 코비드와 싸우는 것인지, 각자 안의 불안과 싸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려드는 파리와 모기로부터 서로의 밥상을 지켜내느라 팔을 내도록 휘저으며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번의 고민 끝에 나가 앉아 어정 하게 앉아서 행여 나도 모르는 새 , 앞에 앉은 이에게 병을 옮길세라( 혹은 옮을세라) 불안해하면서도 집안에서 격리한 그 시간들이 무색하게 밥을 뜨며 , 파리를 쫓으며 ,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아주 잠깐 , 마주한 그 얼굴이 어지러워 보일 만큼 새롭고 낯설게 느껴질 만큼, 오랜만이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소식과 주변의 일신상의 변화들에 대한 이야기. 새로 나타난 바이러스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손도 못써보고 돌아간 분들 소식과 남겨진 가족 이야기.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어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나라에서 도와준다는 돈을 받기 위해 서로 나누는 정보들..... 그저 꽤 오래 산 우리의 나이 탓이려니 하고 잦은 부고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했지만 개중에는 우리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도 있었다. 변화 또한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나워진 미국의 쫀쫀하고 흉흉한 인심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신분문제로 , 보험 문제로 한국으로 되돌아 갔고, 누구는 하던 장사를 임시로 닫았다가 영영 닫았다. 길바닥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살게 될 거라고도 했다.
친구와 어설프게 돌아서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은 차도 막히지 않고, 조용했다.
내가 사는 엘에이 한복판이 이렇게 조용하고 유례없이 고요한데 , 동시에 심난한 경우는 나에게는 처음이다. 소리 없는 전쟁 같은 느낌이다.
그 느낌이 너무나 현실이라는 것은 뉴스마다 증언해주고 있다.
마음도, 현실도, 정책들도 나라마다 다 어지럽다.
처음 겪는 일이니 모두들에게 혼란스러울 것이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처한 입장대로 혼란하고 괴로울 것이다.
누구는 긍정 부자처럼 긍정하게 말하고 누구는 말은 그리 해도 속은 괴로울 것이며, 누구는 말도 못 할 만큼 속과 겉이 타들어갈 것이다.
그런들 어찌할까.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이 나만 억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 위로 삼아 본다. 세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늘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늘 어려움은 있어왔고 인류는 그 어려움들을 헤쳐오며 아프게 발전해왔다. 나만 거기에서 예외일 수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심지를 다독이지 않으면, 고요한 하루를 마주하기는 어렵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도 털어내고, 자꾸자꾸 내 생각을 다독인다. 불안을 대면하고 잠재우는 일에 올곧이 나만 남게 되면 , 문제가 늘 있는 것이 일상임을 깨닫게 된다.
그냥 밥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밥 한 끼 나누러 나올 수 있는 소화력과 다리 근력 그리고 파리를 쫓을 수 있는 팔 힘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한 끼 식사가 어쩌면 우리에게 허락된 제일 큰 기쁨이고 선물이라는 건 2020년 코비드가 준 깨달음이 아닐는지.
나의 2020년의 제일 큰 깨달음은 그것이었다.
식구들 및 절친들과 함께했던 식사.
살아서 함께 나눈 시간과 먹을거리와 사는 이야기들... 그게 내가 누린 실질적 호사였고 기쁨이었음을.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나와 함께 나누어준 그리고 앞으로도 나눌 그대들과의 모든 식사가 새삼 감사하다.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