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ica Nov 06. 2020

있는 자와 없는 자

며칠 전 , 낡고 낯선  작은 RV 트레일러 한 대가 우리 집 앞 길에 주차를 했다.  번화한 곳에서 좀 비껴있는 주택가라 우리 동네에 주차하는 차는 늘 비슷해서 , 나는 동네에 친지를 둔  사람이 방문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스름한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그 트레일러 안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동작을 멈추고 , 숨을 죽이고 고개를 돌려  Rv 차를 주시했다.
그 작은 집에서도 랜턴이 켜지고 저녁을 준비하는 것처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인기척을 의식하고 느낀 순간부터 너무 세세히 느껴졌다. 얼마 전 동생이 해준 이야기가 스치듯 생각났다. “ 언니. 요즘 홈리스들이 낡은 rv 차를 얻어서 길거리에서 주차하고 거주하는 게 문제래. 얼마 전에도  우리 노인 아파트 앞 길에 주차하는 rv 가족을 다른 데로 가라고 관리인이 쫒았어”  노인 아파트 두 곳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동생은 사실 듣기 괴로운 민낯의 사회문제들을 자주 이야기해준다.  

엘에이 집값이 폭등하고 렌트비가 널을 뛰면서 정말 많은 홈리스들이 생겼고  모퉁이마다 다리 밑 후미진 곳은 다 텐트로 넘쳐나고 있다.  최근 한 타 한복판에 홈리스 거주타운을 짓겠다고 해서 온통 한인 커뮤니티가 들고일어났었다.   정말 요즘 다운타운 스키드로에는  그 수가 엄청 늘어나서 지나가기 무서울 정도다.  아니, 정해진 곳뿐 아니라 인근 대로변에도 너무 많은 수의  홈리스들이 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인파 가운데서 버젓이 엉덩이 내놓고 큰일을 보는 사람들도 볼 수 있고, 술인지 약에 취해 길로 물건을 던지며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다.
곤혹스럽다.  보기 괴롭고 슬프다.
하지만 돌아서 멀리 지나오면.. 안 보이면 그래도 곧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우리 집 앞이라니!


그 Rv 속 홈리스는 수돗물이 없어 우리 건물 마당에 스프링클러에 연결된 물을 썼을 것이다.  큰 나무 두 그루 아래, 혹은 마당 풀밭을 화장실 대신 이용했을 것이다.  아아.. 그건 둘째치고 딸내미가 혼자 드나들 때 위험할까 봐 너무 신경 쓰였다.
나는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이라, 그 사람과 행여 눈이 마주칠까 봐 문도 못 열었다. 잠을 자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영 길에서 사는 얼굴도 모르는 그이가 괜스레 걸그적거렸다. 내내 맘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저 그 사람이 자진해서 얼른 떠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굴뚝이었다...


고맙게도 며칠 뒤 그 사람은 떠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 멀리서도 보이던 트레일러가 안보이던 날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거라지에 주차하고 내리니 악취가 코를 찔렀다.  냄새로 보아하니 아마도 그는 그동안 모아 온 각종 오물과 배설물을 길바닥 한가운데 던져버리고 간듯했다.  며칠 동안 온 동네에 고약한 냄새가 넘쳐났다.
그리고는 청소차도 지나갔고, 비도 실컷 내려서 어쨌든 길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내내  내속은 시끄러웠다.
괜히 내가 쫓아낸 거 같은 미안함과... 더 솔직히  말하자면 쫓아내기 전에 떠나가 주어 고마웠다.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마음과 생각은 그 RV 차가 떠난 후에도 나를 괴롭혔다.

사실 나는 몇 년 동안  매주  홈리스 soup serving을 하며 다운타운 홈리스들을 돕는 일을 했었다. 돈 아끼지 않고 꽤 정성들여 했었다. 그뿐인가? 몇 년 동안 수시로 멕시코 빈민가의 사람들 챙기느라 국경을 넘는 일도 잦았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품었었다. 진심으로 그때는 그들을 안아줄 수 있었더랬다.

헌데, 내 집 바로 앞에 살게 된 한 홈리스의 낡고 작은 RV차에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온갖 현실적 걱정들과 이유를 찾기에 급급한, 부끄러운 이기심으로 나는 낯선 그 차량이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내 이중적인 마음과 생각에 놀라고 부끄러웠다.  그가 버리고 간 길바닥의 오물을 꼭 내가 뒤집어쓴 것 같은 그 기분.

그는 떠났지만 더더욱 마음이 괴롭고 무거워졌음을 고백한다.



수없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처럼 꾸민 개와 고양이들을 마치 가족처럼 ,챙기고 같이 사는 요즘이다.

나도 동물을 좋아한다.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어서 기회만 보고 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훈련 안 받은 동물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길바닥에서 먹고, 자고, 배설한다.  동물들은  사람처럼 대접받으며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데 도리어 인간은 돈이 없어짐과 동시에 인간답지 못한 삶을 이어가며 길고양이처럼 모퉁이마다 북적인다.


나는 혼란스럽다.  혼란스럽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이중적인 나 자신도 괴롭다.

나만 이런가?

코비드 사태 이후 다운타운 꽃 도매상 주변은 엄청난 홈리스 군락으로 변했다. 이번 선거의 중요 쟁점 또한 홈리스들을 위한 정책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달 벌어 그달살이를 하는 우리는 월세살이를 한다는 것이 수입이 끊기면 몇 개월 채 못가 길바닥 신세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들의 문제가 동떨어진 남의 문제만이 아님을 어렴풋이 , 혹은 불길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홈리스가 자주 보이고 많이 보일수록  더 자주, 더 많이 심난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살고, 더 행복하기 위하여 다들 애써왔는데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온 걸까.
아아, 사람은 짐승 같아지고, 짐승은 인간처럼 사는 세상.

매거진의 이전글 짝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