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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Dec 10. 2022

간절하되 비굴하지 않게 3

처음의 실패로부터 다시 시작!

처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처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을 팔자는 못되었다.

그놈의 “합법적 신분 유지”라는 견고한 요지부동의 벽 앞에 서서 늘 기어오르지는 못하고 대롱거리며 매달린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영주권을 해결해주는 직장을 바로 들어갔다면 쉬울 일이었겠지만, 그런 쉬운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E2비자를  무리 없이 이어가려면  손해를 보고 정리한 커피숍에서 다시 쉴 틈 없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아보아야 했다.


실패로부터도 배운다고 했다.

나는 지난번 일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들을 생각해보았다. 참 힘들었던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그중 하나는

시시때때로 속 썩이는 직원들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불쑥 들이닥치는 health department에서 나오는 inspection이었다. shift 마다 바뀌는 직원들은 때때로 예고 없이 무단결근하는 사람도 있었고, 각자의 생활의 자잘한 이유들로 지각을 했다. 아침나절의 커피숍은 그야말로 출근 전 바쁜 직장인들의  감각을 깨우는 생명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일하는 사람 한 명의 지각과 결근은 손님들을 기다리게 하고 결국 돌아서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했다. 그런 일을 염려하다 보니 나의 일하는 시간은 자연히 늘어나게 됐고 쉴 새 없이 직원들의 공백을 메우는 일의 반복이 일상이 되었다.

또한 분기별로 health dept의 inspector 들의 방문이 있었는데 시간을 가리지 않고 들이닥치는 그들의 방문은 늘 나를 긴장하게 하곤 했다.

작은 주방은 각종 재료의 수납과 여분의 식품들을 저장하기엔 어려웠으므로 매일 아침 장을 보아야 했음도 물론이다.

그러면 매일 장 보지 않고, 많은 종업원을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일..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궁리하던 나에게 옷가게를 하던 친구가 가게 인수를 제의해왔다.


옷가게..

나는 여러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도 되고, 인스펙션도 없으며, 매일 장을 보러 새벽부터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업종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친구의 가게는 한국의 보세 옷들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샵이었는데 인테리어며, 위치가 한인타운의 중심에 있고 상가 안에 식당들과 다양한 소매점들이 있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었다. 개업초부터 드나들며 봐왔지만 매상이 꾸준하고 단골층이 많아 안정적인 가게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 보세 옷을 취급하는 샵이 없어서 한인 이민인구가 많은 엘에이에서는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안목 좋은 친구의 유니크한 옷들이 계절과 시기를 불문하고 좋은 매상을 유지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픈이래 기록해둔 장부까지 다 보고 알고 있었던 친구의 옷가게는 무리 없는 투자로 인식되었고,  평소 옷에 관해서라면 센스 있다는 소릴 들어왔던 나 인지라 자신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예쁜 옷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옷가게로의 업종전환이 마치 커피숍의 힘든 마음고생과 몸고생으로부터 보상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에스크로가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한 비즈니스는 기대하고  예상했던 대로 잘 되었다. 매상은 안정적이었고, 몸도 고되지 않았으며, 늘 예쁜 물건들을 이리저리 디스플레이하며 모처럼만에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그런 시간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2018년의 금융위기는 불경기로 이어졌고, 그 핑계가 아니었더라도 남편의 사업이 악화일로를 겪으면서 우리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게 되었다. 불경기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매상 실적이 있었는데도 결국 부부 공동명의로 되어있던 은행거래들과 신용문제로 인하여 우리는 함께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인삼각으로 묶여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파산절차도 함께 밟게 되었다.


사이가 좋던지, 그렇지 않던지 간에 부부는 운명공동체로 묶여있음을 절실하게 느낀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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