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집도, 남자도, 새끼도, 사랑도, 청춘도 없는 찬실이의 복이란..
41살 노처녀 찬실.
찬실이는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에 빠져 꿈을 꾸다 그 인생의 모든 시간을 영화로 채우고 살아온 싱글여자입니다.
예술 영화를 만드는 스타감독 지명수의 프로듀서로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하면서 열정을 불태우던 그녀였습니다. 그런데 새 영화의 크랭크인을 앞두고 감독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하게 되고 , 그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삶과 일은 찬물이 끼얹어집니다.
영화일도 끊어지고, 모아둔 돈도 없는 찬실은 산동네 쪽방으로 이사를 하고, 당장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일을 하다 친해진 여배우 '소피'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의 집을 청소하는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되죠.
사실, 그녀는 소피에게 당당하게 자청합니다.
쭈빗쭈빗 어렵게 일자리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당당하게요.
'먹고 살길이 없는데 일도 없고 아무도 안 찾아주니, 한 푼이라도 나는 벌어야 한다'라고 말이죠.
그녀가 거침없이 팔 걷어붙이고 열심히 청소하는 중에 소피의 집으로 불어과외선생이자 단편영화감독인 김 영이 방문하게 되고, 찬실은 그날 이후 그에 관한 많은 공상들을 하며 마음이 흔들립니다.
같은 관심사인 영화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영화계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구성원으로서의 서글픔도 공감하게 되죠.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찬실이는 그녀가 사춘기 시절, 처음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때 사랑해 마지않던 장국영을 기억해 냅니다. 아트무비와 블록버스터 등 많은 영화들 사이에서 그녀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홍콩영화들. 그 속에 찬란하게 빛나던 장국영은 찬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 현실에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의미가 되새겨지죠. 과거 속의 사건들을 다시 되새기며 그녀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비슷한 처지의 연하의 김 영감독에게 기대고 싶어 집니다.
돌직구 고백과 함께 백허그를 날린 찬실에게 그는 '누나'라고 밖엔 생각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대답을 하고.. 그만 부끄러워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은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정성스레 싸 온 도시락 가방은 길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모양도 빠지게 우리의 찬실이는 주섬주섬 도시락과 보자기를 끌어안고 도망칩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은 서글프고, 부끄럽고, 처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울어서 화장이 번져 너구리가 된 채로 집으로 돌아온 찬실이에게 장국영 귀신은 방으로 찾아와 말해줍니다.
"외로운 건 그냥 외로운 거예요, 사랑이 아니에요"
(당신은 지금 그냥 외로운 거예요,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쫌만 더 힘을 내봐요"
(진짜 당신이 원하는 건 사랑이나 위로가 아니에요, 당신 자신이 누군지 다시 생각해 봐요)라고 말이죠.
찬실의 자존감과 자부심은 곤두박질치고 참담해지죠.
사랑하는 영화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살아온 찬실, 그녀는 40 나이에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이 없다는 상실감과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는 현실에 깊이 좌절합니다.
완벽하게 바닥에 내쳐졌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찬실은 지나온 인생과 행복, 그리고 자신의 삶의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죠.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원하고 바라는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 것이죠.
'사랑은 몰라서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만은 나를 꽉 채워줄 거라 믿었'던 어린 나날의 찬실..
그러나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삶의 의미가 뭔지 궁금해졌노라고 ,, 그리고 그 궁금함 안에서 영화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녀는 ( 욕망으로서의 ) 최우선순위였던 영화가 아닌, 그녀의 삶 안에서 존재하는 영화의 의미를 다시 찾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생활의 벗은 주인집 할머니(윤여정)인데, 딸을 잃은 주인집 할머니에게서 찬실은 참 어른이 가진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상실한 노인, 그 노인의 일상은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루의 분량만큼씩 그리워하고, 하루만큼씩 애써서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찬실은 알게 됩니다.
이제 찬실은 주인할머니와 정성스레 콩나물을 다듬고, 아침 산책을 하는 일상에서 다시 힘을 얻습니다.
상실과 부재가 자신을 쓰러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 자세히 돌아보아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찬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쓰며 다시 꿈을 꿉니다.
그리고 찬실이도 보름달에게 기도하죠.
’ 우리가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