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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Aug 05. 2023

찬실이는 복도 많지 2

욕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찬실이의 엄청난 복

June Gloom으로 어둡고 가라앉은 회색빛의 엘에이 하늘.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겼대도 기쁨조차 반감될 것 같은 찌푸린 날씨다.

암튼 5-6월 내내 햇빛이 쨍한 날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면 닿을 거리에 있는 Academy Museum에서  6월 동안  Korean Women Directors를 진행한단다.  목, 토, 일요일에 한국 여성감독들에 의해 제작된 영화들을 선정해서 상영하고, 모두 다는 아니지만 몇몇 영화의 감독 혹은 제작자들을 초청하여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상영 예정인 영화들을 보아하니 이미 개봉했던 것들이어서 개중에는 전에 본 것도 있고,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침 오늘 보게 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본 적도 없고, 넷플릭스에는 없는 영화라 살짝 기대가 되었다. 게다가 감독과의 Q&A 시간도 있다니!




극장에 착석하고 , 곧 영화는 시작되었다.


영화는 앞에 써서 올린 리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줄거리로 보면 사실 첫 느낌은 너무나 평범하다.  

눈앞에  한가득 펼쳐진 꾸밈없이 익숙한 서울거리 풍경과 신경 쓰지 않아도 귓속까지 들어와 선명하게 박히는 한국말 대사들이 물에서 막 나온, 살아서 펄떡거리는 생선처럼 싱싱하다.

하지만 영화는 첫 장면의 첫 사건 이후( 술자리에서 감독이 심장마비로 돌연사한다)로는 그다지 큰 일(?) 없이 소소한 전개로 이어진다.

복이 많다고 감탄이 나올만한 박진감 넘치는 극적인 반전도 없고, 가슴이 미어지게 눈물을 쥐어짤만한 감성이 절절 끓는 부분도 없다.

선한 사람이 선한 맛을 드러내려면 성깔 더럽고 욕심 사나운 , 누가 봐도 나쁜 놈이 하나쯤은 등장해야 하는데... 이 영화엔.... 그런 사람도 없다.  

등장인물들 중 화려하고 특이해서 따라 하고 싶은 패션이나 말투가 생각나는 점이 있나...?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없다.

동네 골목 어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대사들은 그저 우리들의 일상처럼 내내 평범하고 사소하다.

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찬실이가 가진 복은 무엇일는지 곰곰이 그리고 찬찬히 지켜보았다.  굳이 제목을 그렇게 붙인 김초희 감독의 복에 관한 관점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동안 마무리가 어찌 될지, 그녀의 삶이 행복한 결론을 내어서  보는 나도 안심할 수 있는 만족한 엔딩이 기다려져 조바심이 났다.  

복이 많은 찬실이라고 제목으로 이미 결론을 지어주었으니 궁금할 밖에!

대단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하고 사소한(?) 인생의  주저앉은 찬실이는 어떻게 다시 일어서게 될까? 의 궁금함.


대단하지 않은 찬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찬실, 불혹의 나이에 망해먹은 찬실,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늙은 것도 아닌 찬실, 연애한번 못해보고 그나마 오래간만에 온기를 느꼈던 이성에게도  여자가 아닌 누나로 밀쳐진 찬실, 주머니가 너무나 가벼워서 뒷모습조차 시려 보이는 찬실.


하지만 그렇게 조급했던 나의 마음과는 달리, 영화 속의 찬실이는 극적인 반전이나 어떠한 결론은 보여주지 않았다.  영화의 끝은 찬실이가 달을 보고 꿈을 꾸듯 이야기하는 독백이자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희문의 ’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주제곡이 속삭이듯이 흥얼흥얼  속삭이듯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에 나오는 이희문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사설 방아타령을 편곡한 주제음악과 가사는 내내 귓가에서 떠나지 않고 울렸다

이것도 없고, 또 저것도 없는데 복이 많단다. 없어서 복이랜다.

사실, 영화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있었던 김초희 감독의 행복관에 관한 답변이 이 영화의 주제를 한마디로 설명해 주는 것이긴 했다.  


감독이 생각하는 행복은, 매일의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에 있다는 것이다. 거창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보물처럼 매일의 하루와 일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도 극적 사건이나 반전의 스토리에 있지 않고(물론 현실 속에서도 믿기지 않는 극적의 사건들이 일어남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 같지 않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담담한 누룽지 같은 인생을 그리고 싶었노라 했다.


영화처럼 담백하고 단정한 김초희 감독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모두들 기념 촬영도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찬실이가 마음에서 떨쳐지지를 않았다.

뭣 때문일까?

찬실이의 표정, 걸음걸이, 추억, 울음, 웃음, 분노, 수치, 후회, 막막함, 절망, 기쁨, 깨달음, 연민 등등이 내 마음과 얼굴근육에 겹쳐진 것 같았다.

어쩌면 현재의 내 상황이 영화 속 찬실이의 처지와 꽤나 비슷하기 때문일까?

29년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단출하게 혼자 이사를 나와 지내온 나의 지난 일 년의 시간들이 찬실이의 이야기들과 겹쳐져 보였다.  그녀가 느끼는 아린 좌절과 상실감이 나의 이야기와 오버랩되어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과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그녀를 통해 나에게 들려지고 있었다, 찬실이의 언어로.

 

오늘 하루가 나에게 그랬다.

아니, 돌아보면 나의 지난 인생의 모습이 그랬다.

주어진 시간만큼 힘들었고, 즐거웠고, 감사했고, 두려웠다.  종종 후회했고, 가끔은 무모한 용기를 냈던 적도 있었으며, 실패들로 인해 부끄러웠고, 그러면서도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느라 마음속으로 분주했다.

하지만 지난날들이  절망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 시간들이었다고 해도 내 안에  일상의 작은 보석들이 점점이 박혀있었음을, 난 부인할 수 없다.

찬실이를 응원하고 토닥이던 장국영의 존재처럼, 함께 밥을 먹자고 청하는 주인아줌마처럼 , 느닷없이 찾아오는 동료들처럼… 아마도 그렇게 희망을 꺼트리지 못하게 하는 일상의 보석들 말이다.



찬실이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이 올 수 있었던 건, 좌절이 준 선물이었다.

가진 게 없어서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은 혼자 서 있는 자신을 더욱 부각한다.

그래서 두렵다. 숨으래야 숨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시작인 것 같다.

삶에 진지해지고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점은.


내가 난생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도 그랬다. 혼자인 게 무서웠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두려웠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게 뭔지도 혼란스러웠다.

정작 내가 나를 알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말했던 것들은 앎의 영역에 들어와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줄 모르면서 남을 사랑한다고 했던 것들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


맞다. 숨을 데가 없는 것은 복이다.


남편의 등뒤에, 새끼의 그늘에 , 가진 재물의 든든함 뒤로 숨을 수 없는 찬실이는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두고 삶을 다시 써가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다시 그녀의 인생은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그게 그녀의 진짜 복이다.


나도 그녀처럼, 복이 많다.

달랑 세간살이 몇 가지 들고 이사 나와 가진 것도 없다.

모아둔 돈도 물론 없다. 그저 한달살이다.


숨거나 기댈 데가 없다.

나 자신을 두고 고민한다.

젊음으로 값을 치르고 얻은 이 시간이 너무나 내겐 귀하다.

나를 속이거나 숨지 않을 것이다.

습관처럼  곁에 두고 있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괜한 패배감과 부끄러움으로 침울해졌던 나에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따뜻한 손으로 헝클어진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복의 의미를 다시 새겨준 이 영화가 고맙게 느껴졌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인생이다.  

계절마다 다시 피는 꽃을 보며 딸을 그리워한 주인할머니의 시를 읽다 울음이 터진 찬실이처럼 나도 다시 오지 못하는 이 삶을 정성스럽게 살고 싶은 소망이 ,

보름달처럼 내 마음에  조용히 피어오르는 것 같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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