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설탕이 있잖아!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나의 선명한 장면이 있다.
부엌 옆의 작은 공부방에서 나는 숨어서 흑설탕을 수저로 가득 퍼 올린다. 입안을 가득 채운 거친 흑설탕의 입자가 서서히 녹아든다. 꼬맹이 여자아이는 너무나 행복하고 , 흐뭇하다.! 하하하!
며칠 전부터 나는 가족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생겼다. 넓지도 않은 이 방 한구석에 생긴 나만의 비밀.
엄마가 음식을 만들 때 도와드리다가 흑설탕의 맛이 사탕의 그것과 너무 같다는 걸 알아버린 이후로 나는 호시탐탐 흑설탕을 노려왔다. 어느 날 늘 북적거리던 집안에 가족들은 외출하고 , 할머니는 주무시고, 나 혼자 깨어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그만 의자를 끌어다 부엌 찬장 앞에 세워두고 늘 봐두었던 그 자리에서 흑설탕 한 봉지를 아예 훔쳐내었다!
가슴이 콩당 콩당 뛰었다. 하지만 갈등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자주 들락 거리다 들키느니 아예 한 봉지 다 훔쳐 내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었다.
이후로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책상다리 안쪽으로 숨듯이 기어들어가 아무도 모르는 나의 보물을 캐내었다.
비닐봉지 안에서 탐스럽게 적당히 뭉쳐져 있는 찰기 있는 모래 같은 그 느낌.
책상과 벽 사이에서 조용히 책상다리를 감싸고 있는 나의 보물, 설탕.
오래 방안에 혼자 있으면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몰라. 얼른 나가자!
나는 다시 얼른 나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어른들이 바쁘거나 주의가 산만해지는 시점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러다 숙제를 핑계 대고 혼자 남겨지는 공식적인 나만의 시간이 되면, 나는 두 근 반 세 근 반 뛰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다시 책상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조심조심 고무줄을 풀고 설탕봉지 안에 파묻어둔 숟가락으로 한가득 설탕을 담아 입에 얼른 쏟아 넣는다.
흑설탕에는 정제백설탕과는 다른 캐러멜 향기가 났다. 학교 앞에 늘 있던 뽑기 좌판에서 나던 달콤한 그 냄새!
작은 국자에 설탕이 녹아들다가 소량의 소다가 뿌려지고 나면 봉긋하고 이쁜 갈색으로 부풀어 오르던 내 사랑 뽑기의 맛이 흑설탕 안에 들어있었다.
부드럽게 녹아 하나 가득 내 입안을 채워주는 그 단맛이 나는 너무나도 좋았다.
작은 밥수저에 수북이 꾹꾹 눌러 담은 흑설탕은 내 마음의 비밀이고, 사치였고, 자유였다.
나는 그때부터 혼자가 좋았다.!
그렇게 숨겨둔 흑설탕을 먹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조금 커서 생각해 보니 그때는 친할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기 전, 우리와 살림을 합치셨던 때였다. 할머니가 들어오시고 할머니의 살림과 우리 살림들이 합쳐져 정리하느라 집안은 어수선했다.
급작스런 시집살이가 상의 없이 시작된 것에 대해 엄마는 꽤나 힘들어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다 그즈음 엄마는 전에 하시던 미용실에서 숙식하며 일하던 시다언니 한 명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사망한 사건 때문에 변호사 만나러 다니느라 더더욱 바빴다.
엄마는 자주 우셨다. 어린 내 기억에도.
하지만 일가친척 모두의 가장이었던 아빠는 엄마를 다독이고 받아줄 여유는 별로 없는 경상도 남자였다.
벌어진 일들의 수습을 하느라, 과정에서 쌓인 서운함들로 엄마와 아빠는 마주칠 때마다 소리는 입안에 가득 물고(어른 계신 데서 소리 높일 수 없는 예의 챙기는 집이다!) , 험한 눈빛과 소리 없는 눈물로 다투셨다.
아무튼, 급하게 이사 오신 할머니를 뵈러 고모들 뿐 아니 손님들도 자주 드나드셨다. 그러니 살림 도와주시던 가정부 할머니도 드나드는 식구들 치다꺼리하느라 덩달아 바빠졌다.
집안의 어른들은…. 제각각, 그렇게, 바빴다.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는 그 상황에 가족들의 관심은 당연히 나에게 있지 않았다.
각자가, 각자의 다급한 일들을 해결하느라 모두가 바쁘고 황망할수록 나에게는 참으로 너그러웠다. 숙제검사도, 일일학습지 검사도, 나의 식생활과 학교생활에도. 나는 그저 조용히 말썽 안 피우고 공부하는 척 방안에 들어앉아있으면 되는 거였다.
그 어수선함에 묻혀 설탕 훔치기는 수월했을 거다. 언제 멈추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그 시간들은 지나고 나는 이제 설탕이 그렇게 소중하지 않은 나이가 지났다.
그것은 나를 웃게 하는 유쾌한 기억이었다. 생각날 때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완전범죄의 추억을 가진 10살의 나 자신을 , 나는 귀여워하곤 하였다. 세상 그 어느 부자도 부럽지 않은 그득한 흑설탕 한 봉지는 나 혼자만의 비밀로 내 기억에 각인되었다.
그때의 그 장면이 나에게 다시 의미 있게 소환이 된 건 내가 29년 결혼을 끝내고 혼자 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mbti에서도 증명되는 내성적 성격의 나는 북적이는 소란의 틈에서도 곧잘 혼자 떠있는 섬이 되곤 했다.
소음 한가운데서의 적막이 내 안에서 점점 커지면 나는 어린 날 방안에 혼자 숨어 설탕을 입에 넣던 그때가 자꾸 생각났다.
나의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결혼 생활의 소란스러움과 혼란과 분주함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인생이 문지방 한번 넘으면 고요해지듯 그렇게 넘나들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안 전체의 소란에서 내가 방문 하나 열고 들어가면 온전한 내 공간과 달콤한 설탕을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저 나만의 방으로 가서 피신하고 싶었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가게 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그 순간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보곤 했다. 그렇게 체온으로 녹이며 한 모금 꿀꺽! 또 꿀꺽! 설탕물이 내 목구멍을 타고 수혈되면 곧 모든 게 괜찮아질 거 같았다.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나는 결혼 이후에 잠이 더욱 없어졌다.
경계 없는 공간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의 불이 꺼진 깊은 밤이 되어서야 나를 쉬게 할 수 있었으니까.
나를 숨길 수 있는 적막과 어둠이 좋았다.
그건 마치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문과 문지방 같은 것이어서 어린 시절의 나처럼 잠든 식구들과 소란스러운 세상을 피해서 나는 부엌 앞에 쪼그리고 앉아 흑설탕 대신 와인을 홀짝이게 된 것이었다.
깊은 잠을 들지 못해서일까?
이혼준비를 하며 집을 나온 첫해, 나는 수시로 꿈에서 흑설탕을 퍼먹고 누워있는 나를 보았다.
도대체 왜 그 장면이 꿈으로 나오는 건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좋은 기억인데, 행복한 추억인데 왜 자꾸 나오는 거지? 하고 갸우뚱했다.
그런데 꿈을 자주 꾸면 꿀수록, 나는 누워있는 어린 나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같은 꿈을 꾸다가 나는 방바닥에 누워 입에 고인 설탕물을 삼키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어린 나의 얼굴을 보았다.
얘야! 아가!..
깜박이지 않고 천장 벽지 한 곳을 응시하는 것 같던 눈에 고인 눈물이 곁으로 흘러 머리가 젖고 있구나…두 무릎을 끌어안고 등을 동그랗게 말아 얼굴에 무릎이 닿을 듯 말 듯 앞뒤로 움직이는 어린 너. 아니, 나.
어린 나는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그 움직임에 내 심장의 흐느낌을 숨기고 있었다.
입안의 설탕물로 흘러나오는 소리도 삼키고 있었다.
어둠이 간장물처럼 베어드는 그 방 안에서 나는 설탕으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면서 , 그렇게 … 혼자였다.
갑자기 가슴깊이 무언가에 찔리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아! 나는 울고 있었다. 두려움과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그 시간들을 몸을 숨기고 나 스스로 위로하면서 나는 나를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때 외로웠구나!
내 마음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나는 설탕으로 채웠구나…
분주하고 많은 사람들 안에서 나는 그때 슬프고 외로웠다.
그 슬픔과 외로움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른들이 바빴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채워지지 못했건 간절한 목마름이 분명히 나에겐 있었다.
많은 무리들 안에서 외딴섬이 된 것 같은 외로움.
그때 나는 누워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세상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그들의 높아진 언성과, 분주함 가운데 드러난 무관심과, 불안으로 휩싸인 어른들의 긴장이 고스란히 나를 압도했다. 어린 나는 귀를 찌르고 마음을 아프게 한 다스려지지 않는 불안함을 그렇게 혼자, 설탕물로 희석시켜 한 모금씩 삼켜버리고 있었다.
그 불안의 단물은 세포 하나하나를 스치고 스며들어 나의 몸 구석구석에 심겨 함께 성장했다.
나의 우울과 불안과 슬픔은 소리로 나와 도망하지 못하고 설탕과 함께 스며들어 나를 키웠다.
방안의 어린 나에게 나는 다가서고 싶었다.
어린 10살의 나에게 50살의 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아무 일 아니라고, 어서 일어나 바깥에 나가 놀자고, 등 두들기고 일으켜 세워 꼭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 그 아이는 잡힐 듯 안 잡히고 다가서고 싶지만 다가서지지 않는다…
혼자 독립하여 살게 된 이후 나는 사람들을 피할 공간과 시간을 따로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전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며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멍해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와는 반대로 이제는 세상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혼자 살게 된 집의 문을 열기만 하면 나는 그 안에서 자유했다. 꼭 엄마품에 안기는 어린 새처럼 나는 혼자인 집에 뛰어들었다.
현실과는 다른 이상한 꿈의 나라로 들어가는 엘리스처럼, 고된 가정부 일을 마치고 람다스가 따스하게 만들어준 비밀의 다락방으로 스며드는 소공녀 세라처럼.
나를 세상에서 견딜 수 있도록 품어주는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마치, 요새처럼.
나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제 외롭게 너를 두지 않을 거야. 꼬마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라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고, 건강이 있고, 마음이 있잖아.
살아있잖아, 지금까지 견뎌왔잖아,
어두운 방 한구석이 아닌 ,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설탕봉지를 찾아 나서도 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너를 혼자 둔다 해도, 나는 너와 늘 함께 일거야. 우린 앞으로 더 진짜 좋은 친구가 될 거야. 그동안 혼자 외롭게 해서 미안해. 그동안 잘 견뎌주어서 너무 고마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남 사는 대로 따라 하며 살았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변화무쌍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았다.
나 자신이 견고해지지 않고서는 사랑의 집은 지을 수 없으니까.
혼자 있는 공간과 시간 안에서 나를 충만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디에서든 충만할 수 있을게다.
이제, 다시 그 방문 앞에 서게 된 ‘몸만 어른이 된 나’와 방 안에서 ‘설탕을 물고 울고 있던 어린 내’가 친해질 때까지.. 나는 계속 말을 걸고, 안아주고, 마침내 그와 함께 세상을 향해 방문을 열어젖힐 참이다.
이 새로운 여정에 나를 서게 한 모든 인생의 사건과 사람들에게 , 그저 ,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