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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Sep 06. 2023

선교에 대한 변명

나를 위한 선교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우리는 멕시코로 향했다.


2010년 내가 이 교회에 조인을 한 이후 매번의 연휴 때마다  나는 무리들과 섞여 놀러 가듯 선교여행에 함께 해왔다.

때로는 멕시코의 다양한 지역으로, 때로는 아프리카 케냐로, 때로는 애리조나의 인디언 거주지역에, 때로는 엘에이 한복판, 때로는 중국과 필리핀으로  버려진 공간을 찾아가 연휴의 모든 시간들을 쏟아부었다.  종교유무나 교단, 혹은 인종에 대한 공통분모가 전혀 없었어도 누군가를 통해 도움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에게 도움을 청해온 사람들을 향해 가능한 편견을 배제하고  시간과 마음과 금전적인 부분이 맞닿아질 때마다 계산하지 않고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비단 경제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을 선정했고,  가기로 결정한 순간 이후로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의 최선을 다했다. ( 나는 아니더라도 같이 간 나의 동료들은 적어도 그랬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엄청 대단하고 숭고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가 남 돕는 일을 하는 것을 취미생활로 택할 만큼 여유 있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었다.

다들 그 달 벌어  그 달 먹고사는 달거리인생들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글 타고 우리가 종교 때문에  착한 일 하는 기독교인이 되고자 그리 했던 것도 아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굳이 남의 평가 따위를 의식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신심이 부족하고 태생이 시니컬한  삐닥이 교인이니 뭐 말할 것도 없다.

뿐 아니라 그 당시  망하고 망해서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 없는 가난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누구의 사정을 내가 봐줄 수 있는 여유가 있던 것은 절대  아니었고, 그저 애들 셋을 혼자 책임지는 상황에서 긴 연휴가 더 무서웠기 때문에 남들 간다고 하는 길을 따라나선 것뿐이었다.

그 시간들이 덧대고 덧대어져 어느새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주로 같이 가는 무리들의 삼시 세 끼와 간식을 담당하고 도왔다.  재주 많은 이들은 여자들이라도 공사현장에서 집 짓고   나무 자르는 일이나 전기 콘센트를 달고 하는 일을 배웠지만 그런 재주라곤 없는  나는 그들을 먹이고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로 그 자리를 지켰다.

사실, 이제나 저제나 나는 누군가가 내 앞에서 먹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흡족하다.

잘 먹고 부른 배를 뒤로 젖히고 늘어져있는 만족한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내가 먹고 배부른 것보다 더한 만족감을 나에게 주었다.  그게 나에게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당시 내 상황에서 엉뚱한 곳에서 받는 소박한 만족감이라고나 할까?


사실 나는 여행사 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꽤 많은 나라와 지역을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녔던 곳들의 호텔과 여행지마다의 기억이 모두 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었다.

다니다 보면, 세계 어디에도 비슷한 호텔의 수준과  멋진 인테리어들, 그리고 박물관 및 유적지 관람과 쇼핑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비슷한 일정들이 오버랩되어 어느 나라였든, 어떤 액티비티든 대부분 거기서 거기 같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었다.  배부른 소리라고 혼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여행이란 게 큰 감동으로 남지 않게 되는 어느 시점을 만나게 될 때가 있었다.

세상일이 별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게 되는 그 심드렁한 상태.

감동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 감동의 기대치에도 면역이 생겨 어지간한 일에는  눈으로는 봐도 마음으로는 느껴지는 것이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인생도 권태롭고, 은행계좌도 늘 구멍 난 물독처럼 간당간당의 세월을 지나가는 시점부터 돈 안 들이고 따라나선 밥순이의 연휴 프로젝트는 나에게 무언가 색다른 힘을 주곤 했다. 돈 주고 좋은 곳만 다녔던 빛의 여행이 아닌 빛 뒤에 가려진 그림자의 여행이 바로 선교 여행이었다.


그게 참 신비롭다.


세상 구석구석에 빈민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들의 삶은 어디에서나  늘  지난하고 , 더럽고 , 슬프다.

그들을 연휴 동안 찾아가 잠시 먹이고, 돕고, 건물을 지어준다고.... 그들이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물리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절망스럽다.

우리는 일시적인 도움밖엔 그들에게 줄 수가 없다. 언젠가 처음엔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나"를 뿌듯해하고 마치 슈퍼맨 망토를 빌려 입은 듯한 대견함으로, 마치 여름 소낙비 지나고 하룻저녁에 훌쩍 자란 들풀처럼 자존감이 올라갔던 적도 있긴 했다.  

하지만 선교여행이 거듭될수록 알게 된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주는 일들은 정말 일시적이고 그들이 당면한 가난과 절망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정말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게 절망스럽다. 불공평한 세상을 향해 화도 난다.

우리의 무능력과 한계가 좌절스럽다. 하지만 더 괴로운 것은 선교에서  돌아와 내 삶의 자리로 돌아오면 그들을 향한 불타는 정의감과 연민은 곧 사라지고 내 은행계좌와 당장의 손익에 온 에너지를 쓰는 나를 바라볼 때이다.

이런 시소 같은 내 안의 감정의 널뛰기를 거듭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재미도 결국은 보지 못하면서, 나는 왜 연휴마다 짐을 또 싸는가?  왜 미친 여자처럼 솥단지를 들고뛰다가, 다시 짐을 싸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듯 내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일까?

어디 그일 뿐인가?

같이 길을 나섰던 동료들과의 작고 사소한 의견충돌로 또 맘을 상하고, 여전히 빈민들을 향해 두 팔 벌려 흠뻑 안아주지도 못하는 쫄보이면서도 , 왜 나는 연휴마다 따라나서게 되는 것일까?

습관일까? 정의로워서? 연민이 많아서?

나는 아직도 가난한 그들의 살림집과 화장실을 둘러보면서  선뜻 그들의 집안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꼬질꼬질하지만 눈빛은 누구보다 빛나고 환하게 웃어주던 그 아이들의 더럽고 찐득한 더벅머리를 나는 감싸 안아주지 못한다.

그들이 내준 더러운 양은컵에 담긴 귀하디 귀한 달달구리 커피를 나는 선뜻 입에 흘려 넣지 못한다.

그런 내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마음이 슬프다.

그들을 위해 슬픈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 슬프다.



그렇게 십여 년 동안 나는  노화했고, 느슨해졌다.

모든 면에서 경험도 연륜도 십 년 치정도는 쌓였다.

굳이 지난 세월의 선교경험을 돌이켜보며 나의 목표는 그들을 향한 나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 내가 짐을 매번 싸는 이유는,

나를 선교하기 위해서다.


부디 익어가는 노화와 보드라운 느슨함으로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밥솥을 들고 나르는 힘은 부족해지지만, 밥 먹는 아이들을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손길이 되길 바란다.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반찬을 어떻게 담아내느냐 같은 사소한 것으로  마음 상하지 않고 함께 간  동료들의 언어를 그들의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생기길 바란다.

어디를 여행해도 거기에 빛과 그림자 같은 삶의 기쁨과 질곡이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도, 내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길 바란다.

기쁨이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작은 감사가 나를 기쁨으로 인도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과 몸과 마음의 가난이 진짜 풍요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진리를 발견하게 될 때, 나 자신이 그것을 선뜻 받아 안았으면 좋겠다.

그게 내 잦은 선교여행의 이유다.


그래서 내 선교여행은 "부족한" 그들을 향하여 뻗친 “가진" 나의 취미나 열정이 아니라,

내가 소유한 모든 것중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나를 향한 일깨움이고,

부족한 것들로 인해 가진 게 더욱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나를 향한 선교 여행인 것이다.


그러니, 잘하든 못하든 짐을 싸는 일을 꾸준히

실행하고 있는 나 자신을  한 번쯤은 마음으로 칭찬하련다.

수많은 실수에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나의 수행이었음을.. 이제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monicam1x/14

남의집 지어주는 선교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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