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은...
준비하고 뛰어나온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다가 충동적으로 나온 것도 아니었다.
오래 생각해 왔지만 , 현실적인 준비는 없이 뛰쳐나왔다고 하는 게 맞다. 그때는 변하지 않는 그와 더 이상 이렇게 나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집을 나오기 2년 전, 대학 때부터 룸메이트였고 인생 절친이었던 광미의 죽음 이후 나는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삶과 죽음의 문제가 실감 나게 나에게 바짝 다가와 앉았다. 나의 신경더듬이는 나의 인생과 먼저 간 그 친구의 삶을 더듬으며 그동안 죽여놓았던 질문들을 나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입을 틀어막았던 질문들이 내 속의 내 안에서 조용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나는 평생 우울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나는 아주 어릴 때의 기억에서 조차 우울했었고, 슬펐고, 외로웠다.
아, 이렇게 내질러 말하는 것도 참 요즘에나 가능해진 이야기지, 긍정의 힘으로 큰 부와 성공을 이루려는 열망이 가득했던 새마을 운동의 후예들은 우울할 새도 없었을 테지만, 우울해서도 안되었다.
그건 삼청교육대 같은 곳으로 보내어질 이유로도 충분할 만큼 정신나약자로 분류될 이야기였다.
그래서 우울하다는 말을 자주 하거나 하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위로나 공감보다는 되레 배부른 소리 한다는 퉁박을 받기 일쑤여서, 나는 내 우울함에 대한 부분은 처음부터 단단히 막아두었었다.
드러나서는 안돼,. 냄새를 피워서도 안되는 거야...
나는 그렇게 나를 달래고 야단을 쳤다.
겉에서 보는 나는 그렇게 사교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처럼 성장해 왔다. 성적표에는 늘 "명랑, 쾌활하며 사교적임. 주의 산만한 경우가 있어 집중력을 요함"이었으니까.
외로움이란 그런 거였다.
내 안에 쌓아둔 것이 많아질수록 나는 외로웠다.
숨길 것이 많아지고 보여줄 나는 정해졌을 때.
아주 어릴 때부터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되는 삶의 모습들을 목도하게 되면 할수록, 그 삶 안에 내가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되면 될수록, 외로움과 슬픔은 커져만 갔다.
시작으로 돌아가보자,
내 두려움과 슬픔과 외로움의 발원점으로부터.
그럼 지금의 내가 서 있는 이 지점을 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