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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Dec 05. 2023

인륜지대사, 결혼

그 길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다

결혼은 얼떨결에 ,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졸업하기 전엔 안된다며 반대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나갔던 부모님은 상대 부모님을 만나고는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결혼시키는 걸로 결정하고 돌아오셨다.


순식간에 결혼은 결정되고 진행되었다.

요는 그랬다.

알게 된 순간부터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못되게 굴어도 늘 한결같던 그 사람과 사이좋은 부부 금슬의 시부모님, 게다가 좋은 학벌에 적당한 직장을 다니는 그의 능력, 순한 성품, 그리고 그의 부모님들의 여유 있는 생활과 경제력 등등의 이유들은 결혼을 결정하는데 사실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했다.

결혼은 이상과는 달라, 이건 현실이고 사랑은 현실에서 일궈가는 거야. 냉정해져야 해.라고.


평생을 양가에서 반대하는 연애결혼으로 힘겨워하던 부모님을 보고 자란 나는 결혼 조건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배우자의 경제력과 양가의 축복으로 생각해 왔다. 순하고 무난하며 성실하지 않았다면 가지 못할 길을 걸어온 그 사람의 살아온 이력과 만나온 이래 나의 못된 신경질과 짜증도 허허 웃으며 한결같이 받아준 그 사람을 보며 나는 그가 배우자로서 적절한 사람일 뿐 아니라, 나의 부족을 채워줄 수 있는 든든한 대지 같은 사람이 되어줄 거라 믿었다.

내가 그를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은 묵인한 채 말이다.


1994년 6월의 어느 날 우리는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처음이었고, 모든 것이 풍요로웠으며 여유로웠다.  결혼식 후 함께 못다 한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가기로 했던 계획은 바로 임신한 이유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결혼과 첫 임신, 그리고 출산이라는 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처럼 연달아 일어났다.



결혼한 이듬해 여름,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내 나이 만 24살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이 어린 엄마였지만 내 몸을 통해 태어난 아기가 너무나 무섭기도 했으나 세상의 그 어느 존재보다 사랑스러웠다. 동시에 남편을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불편함과 괴로움도 아이의 출산 이후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나와 그와 아기가 한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나의 마음 중앙에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운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현모양처가 평생의 꿈이었던 나는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 충실했고, 감사했다.

그렇게 아이의 성장과 함께 그를 향한 마음과 지켜야 할 가정에 대해 대한 사랑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평안했으며, 완벽했다.


가끔 내 마음 한구석에서 나를 흔들어대는 불안의 지진이 요동치는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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